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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모향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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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마지막 고국땅, 인천한국이민사박물관 홈페이지

인천항은 고국을 떠나는 회한의 눈물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기대감이 교차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바로 고국을 떠나 하와이로 향하는 첫 이민단 121명이 1902년 12월 22일 겐카이마루(玄海丸)를 타고 인천항을 떠나 일본의 나가사키를 향해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를 받은 후 증기선 갤릭(Gaelic)호를 타고 요코하마를 거쳐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후 고된 노동의 이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한국 최초의 정식 이민의 시작인 1902년 12월 22일 이후부터 이민이 금지된 1905년까지, 1903년 1,133명, 1904년 3,434명, 그리고 1905년 4월 4일 영국상선 일포드호에 몸을 싣고 제물포항을 출항하여 멕시코에 도착하여 살인적 폭염이 쏟아지는 에네켄 농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1,033명의 멕시코 이민단을 포함한 2,659명 등 총 7,226명이 65척의 배로 인천을 떠나 하와이로 이주하여 고된 노동의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고된 삶 속에서도 한인 이민자들은 힘들게 번 돈을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자녀교육에 진력해 한인학교를 곳곳에 설립하고 한글교육을 시행함으로써 국권회복과 조국의 얼을 심어주려 애썼습니다.

이처럼, 인천은 우리가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에 눈물을 머금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던 출발지였습니다. 또한, 초창기 고국을 떠난 이민자의 90%가 인천지역 주민들이었음을 볼 때, 대한민국 이민사에서 인천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슬픈 눈물로 떠나야만 했던 인천이 이제는 자부심과 감격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자랑스러운 고국의 관문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고국의 관문 인천은, 21세기 한반도의 성장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동력창출의 도시로 부각되고 있으며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장 역동적인 도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인천은 가슴 아픈 이민의 역사를 자랑스러운 조국의 미래로 승화시킴에 있어 전 세계 750만 갤릭호의 후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시민 만족도 조사

태그역사, 인천사, 발자취, 이민, 이민모향도시, 고향
  • 담당부서 : 문화재과
  • 담당전화번호 : 440-4030
최종수정일 201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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