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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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늘 다른 시간-부평 삼릉(三菱) 마을
아픈 역사와 삶으로 엮인 시간 부평 ‘삼릉 마을’. 그 이름은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한자 발음인 ‘삼릉三菱’에서 왔다. 한 지붕 아래 벽을 얼기설기 세워 지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동네. 1940년대 미쓰비시 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돼 뼈끝 녹아드는 고통 속에 일하던 조선인들이 엉켜 살았다. 광복 이후 노동자들은 대부분 떠났지만, 마을은 그대로 남았다. 그 빈자리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삶을 살아내던 사람들이 머물다 떠났다. 마을은 그렇게 낡아갔다. 시간이 멈춘 삼릉 마을에, 오늘 새로운 바람이 분다. 도시재생과 역사의 기록화다. 철거 표식이 나뒹구는 곧 쓰러질 듯 위태로운 빈 공간이지만, 햇살은 평화롭다. 아픈 역사와 고된 삶이 엮어온 시간의 거미줄이 그 아래 빛나고 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오늘, 시간에 허물어진 줄사택. 옛 사진은 1960년대 그 안에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던 주민들의 모습이다.(김재선 제공)기억은 희미해져도, 역사는 남는다. 부평구는 ‘새뜰마을 조성 사업’으로 부평2동 ‘삼릉 마을’에 새 숨을 불어넣고 있다. 새뜰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도 올해 초 문을 열었다. 또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실상을 조사하며 줄사택을 기록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0-07-31 2020년 8월호 -
인천의 맛 ⑪ 민어
민어民魚 울음소리 들리던 바다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열한 번째는 굴업도와 덕적도 파시波市부터 오늘 신포동 골목까지 이어온 맛, ‘귀한 여름 생선’ 민어民魚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덕적도 민어잡이 어부상(왼쪽)신포시장 민어 골목 ‘경남횟집’의 제형남 대표(오른족)만선의 기억2층 창밖 북리항北里港 너머로, 배를 기다린다. 저 멀리 수평선 위로 펄럭이는 깃발. 민어잡이 배가 만선으로 출렁이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거친 파도와 바람에도 기어이 배를 타야만 하는 것이 뱃사람의 운명. 선주船主는 이제야 한시름을 놓는다. 덕적도 북리는 1920~1960년대 민어 파시로 돈과 사람이 넘쳐났다. “이맘때면 민어 잡으러 멀리 전라도 배들까지 죄다 북리로 몰려들었지. 배가 하도 많아서 선창에 댄 배들 사이를 징검다리 건너듯 다녔어.” 뱃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돈을 따라 육지 사람들도 흘러들어왔다. “부자 마을이었어. 다방, 술집 없는 게 없었지. 그 옛날 섬에 상설 극장까지 있었으니까. 약장수도 그렇게들 많이 찾아왔어. 허허.” 덕적도의 조선공이었던 강명선(78) 할아버지는 풍요롭던 섬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덕적도와 굴업도는 ‘민어의 섬’이었다. 1920년 굴업도 가까이 있는 장봉수도長峯水道는 민어가 차오르는 7~9월이면 전국에서 고기잡이배 500여 척
2020-07-31 2020년 8월호 -
몽(夢)땅 인천 Ⅱ-계양구 효성동
1970년대 새마을운동 vs 2020년대 도시재생사업‘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1970년대, 도시·농촌 할 것 없이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논밭이었다가 부평공단 조성과 함께 공단 배후지로 개발된 계양구 효성동 역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전개됐습니다.50년 전 새마을운동을 펼치던 효성동은 지금 도시재생사업을 추진 중입니다.새마을회관 자리엔 주차장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사람이나 동네나 세월엔 장사가 없는 법인가 봅니다.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2020-07-31 2020년 8월호 -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③ 길상초등학교
백년대계를 위해 걸어온 100년세상 모든 학교는 귀하다. 허나 그 중에서도 특별한 전통과 저력을 품은 곳이 있다. 학교를 통해 도시를 들여다보는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그 세 번째 등굣길을 따라 강화로 가는 다리를 건넜다. 지난 7월 100주년 명문의 반열에 오른 길상초등학교. 단군신화가 살아 숨 쉬는 정족산 아래에서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그 길을 고석현(43회 졸업) 총동문회장과 함께 걸었다. 글 전규화 자유기고가│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1920년 7월 10일 사립 진명학교로 문을 연 후 2020년 개교 100주년을 맞은 길상초등학교 모습반만년 역사 깊은 삼랑성 기슭에예년 같지 않은 섬 풍경을 무심히 스쳐지나 학교로 간다. ‘전등사’를 가리키는 표지판 따라 착실히 운전대를 돌린다. 다다른 곳은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국내 최초 사찰 전등사가 자리한 정족산이 길상초등학교를 휘감고 있다.‘반만년 역사 깊은 삼랑성 기슭… 정족산 저 성 틀에 반석과 같이….’ 고석현 총동문회장이 낮은 목소리로 교가를 읊조린다. 사적 제130호 삼랑성은 그 옛날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아올렸다 전해지는 성곽이다. “정족산은 강화의 진산鎭山 중 하나입니다. 그 깊은 정기 흐르는 좋은 터에 1920년 7월 10일 개교한 길상초등학교가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습니다.”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학교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길상의 100년은 특별하다. 한때 10만 명에 달했던 강화의 인구는 점점 줄어 7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저마다의 이유로 섬을 떠나 뭍을 향한 사람들과 줄어드는 아이들. 도심과는 사뭇 다른 상황 속에서 지켜온 긴 세월은 총 8,938명 ‘길상인’들의 자부심이 되기에 충분하다.1906년 조선성공회가 설립
2020-07-31 2020년 8월호 -
미추홀도서관 개관 100주년
100년의 역사 품은 문화의 요람미추홀도서관이 100년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추홀도서관은 일제강점기 1922년 1월 6일 자유공원 내 청광각淸光閣에서 인천부립도서관으로 개관했다. 청광각은 1884년 독일의 무역상사 ‘세창양행’이 관사로 지은 근대식 건축물이다. 도서관은 1946년 12월 중구 율목동으로 자리를 옮겼고, 1958년 인천시립도서관 설치 조례가 제정됐다. 2008년에는 도서관법에 따라 인천 지역 대표 도서관으로 지정됐으며, 이듬해에는 구월동에서 새 단장을 마친 후 미추홀도서관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2013년 송도국제기구도서관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청라호수도서관과 청라국제도서관, 영종하늘도서관을, 2019년에는 마전도서관을 분관으로 편입하며 외형과 내실을 모두 다졌다.미추홀도서관이 100년의 역사를 기념해 기획 전시 ‘100년의 기록, 역사가 되다!’를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 1층 어울림터와 로비에서 9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 시와 의회, 도서관의 성장과 역사가 수록된 도서 44권과 사진 등 귀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책 속에 수록된 변천사와 사라진 건축물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출판 도서, 수도권 최초의 한글 일간 종합 신문이었던 대중일보, 화가이자 수필가였던 천경자 화백의 여인 소묘 등 평소 열람이 어려웠던 자료들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61년 발간된 시립도서관지에 실린 ‘인천시립도서관의 노래’를 발견해 음원으로 복원했으며, 이는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감상할 수 있다.미추홀도서관위치 : 남동구 인주대로776번길 53 홈페이지 : www.michuhollib.go.kr문의 : 032-462-3900‘100년의 기록, 역사가 되다!’ 기획 전시장소 : 미추홀도서관 1층 어울림터
2020-07-30 2020년 8월호 -
인천소사-1997.08.30. 강화대교 개통
1997.08.30. 강화대교 개통섬에게 다리는 특별하다. 보다 쉽고 편리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고,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1997년 8월 강화와 인천 도심을 연결하는 강화대교가 개통했다. 1993년 8월 착공 후 꼭 4년 만이었다. 1970년 개통된 강화교의 노후화에 따라 더 크고 튼튼한 다리가 새로 난 것이다. 강화대교는 강화읍 갑곶리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를 연결하는 길이 780m, 너비 19.5m의 연륙교다. 강화의 다리는 유독 8월과 인연이 깊다. 강화대교 개통 5년 뒤인 2002년 8월에는 초지대교가 완공됐다. 두 다리는 지금도 여전히 강화와 세상을 연결하는 그야말로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그때, 8월의 인천은…1906. 08. 07 월미도 다리 준공1946. 08. 02 인천세관 신설 1951. 08. 25 인천~서울 간 유선 전화 개통 1971. 08. 31 부평정수장 준공1974. 08. 15 인천~서울 간 전철電鐵 개통1991. 08. 01 인천지방경찰청 개청2002. 08. 28 초지대교 개통2008. 08. 01 송도컨벤시아 준공
2020-07-30 2020년 8월호 -
소소한 인천 이야기-인천지명
다시 찾은 그 이름, 물치도인천시 지명위원회가 ‘작약도’를 ‘물치도’로 바꾸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100여 년 넘게 불려온 일본식 이름 작약도는 사라지고, 원래 우리말 이름인 물치도가 제자리를 찾게 됐다.만석동에 속해 있는 물치도는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 영종도 옆에 바로 보이는 자그마한 섬이다. ‘물치’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된 바가 없으나, ‘밀물 때 들어오는 바닷물이 섬을 치받는다’는 뜻에서 ‘물치’라 불렀다는 해석이 있다. 물치도는 영종도와 인천 내륙 사이에 낀 섬으로,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손돌목(염하鹽河)과 인천 앞바다가 이어지는 해로海路에 있다. 그래서 조수간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섬으로 들이치는 물살이 꽤 강해 수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거센 바닷물이 치받는 섬이어서 ‘물치도’라 불렸다는 얘기다.‘작약도’라는 이름은 한동안 별다른 근거는 없이,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스즈끼 하사오라는 일본 사람이 이 섬을 사들인 다음에 지어 붙인 것이라 알려졌다. 멀리서 이 섬을 보면 그 모양이 작약 꽃봉오리와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또는 이 섬에 실제로 작약꽃이 많아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말도 있다. 작약꽃은 우리말로 ‘함박꽃’이라 부르며, 꽃이 크고 탐스러워 붙은 이름이다. 어쨌든 작약도의 원래 이름은 물치도이기에 20여 년 전부터 물치도라는 이름을 되찾아주자는 시민운동이 계속된 끝에 2020년에 와서야 어렵게 결실을 맺게 됐다. 이처럼 땅 이름은 한번 굳어지고 나면 고치거나 바꾸기가 쉽지 않아 처음 지을 때 신중해야 한다.
2020-07-30 2020년 8월호 -
인터넷신문 i-View-인천 이야기로 소통해 온 ‘1500호’
인천 이야기로 소통해 온 ‘1500호’ 인터넷신문 1500호 발행 기념, 도약의 날갯짓인천시 인터넷신문 가 시민 소통 매체로 시민과 함께 성장하며 뉴스를 전해온 지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인터넷신문 는 2005년 5월 9일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창간한 인터넷신문이다. 창간 후 매주 화·목요일 인천시 주요 정책, 문화, 역사,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를 제작해 시민들에게 서비스해 왔다. 지난 7월 30일자 발행된 신문은 1500호라는 의미 있는 타이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인터넷신문 의 15주년은 시민들과 함께 인천을 발로 뛰며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와 뉴스를 서비스해 온 ‘시민 저널리즘’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는 시민기자, 객원기자단을 운영하며 이들이 인천을 구석구석 발로 뛰면서 찾아낸 인천의 이야기를 신문의 주요 콘텐츠로 게재했다. 시민기자들이 발굴한 인천 콘텐츠는 우리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거나 궁금했던 지역의 숨겨진 역사, 문화였다. 가 발굴한 인천 이야기는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지역신문 등에 재인용되어 인천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낚시용품 사장님에서 만화가 된 한창기 씨’, ‘인천 향토 음식 벌벌이묵, 곤쟁이젓’, ‘재연 씨 그물에 사랑 걸렸네’, ‘말 타며 세상을 누비는 영종 안영길 씨’ 등의 기사는 전 국민을 울고, 웃게 한 콘텐츠들이다.의 다양하고 알찬 콘텐츠는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굿콘텐츠서비스’ 인증 획득으로 인정받기도 했다.는 1500호 발행을 기점으로 더 높은 도약과 시민 친화적인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시민들의 니즈에 맞고 멀티미디어 시대에 적합한 동영상 구현과 SNS 연계 강화를 통해 시민들과 더 소통하는 매체
2020-07-30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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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업데이트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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