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 칼럼
개항 140년, ‘제물포 르네상스’ 꽃피우다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허정인 포토그래퍼한적한 어촌이던 제물포(인천항)로 세계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1883년 즈음해서다. ‘개항’과 동시에 인천은 ‘조선-세계’를 잇는 교류의 거점으로 급부상한다. 서구 열강은 제물포에 앞다퉈 영사관을 설치했고, 자신들이 잡은 터에 울타리를 쳤다. 인천해관, 인천감리서 같은 행정기관과 함께 상공업시설, 종교·교육·문화시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140년 전, 인천은 이미 ‘세계적 글로벌 허브 도시’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그런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 최고最古의 역사가 시작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경인선, 팔미도등대, 대불호텔, 기상대 같은 시설부터 종교, 음악, 스포츠, 짜장면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신문물이 인천을 통해 처음 들어와 서울로 전해졌다.새로운 문물의 급속한 유입과 함께 조선 시대 이래 이어져 온 해양을 통한 대외무역 중심지도 부산에서 인천으로 이동했다. 인천~서울 간 화물 수송이 활발해지며 바닷길 중심이던 화물 운송로의 상당 부분이 육로로 바뀌기도 했다.우리나라 근대화의 발원지이자 산업화의 성지인 인천. 그 중심엔 언제나 인천항이 있었다. 인천항 갑문 축조(1918), 1960년대 경제개발5개년계획 추진, 인천내항 도크 확장(1966~1975), 경인고속도로 건설(1968), 연안부두 축조(1973) 등을 통해 물류가 원활해지면서 인천이 우리나라 경제에 담당한 역할은 적지 않았다. 전국 8도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천으로 모여든 것은 “인천에 가면 먹고살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은 그렇게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
2023-05-01
2023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