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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월 풍경-캠프마켓의 흔적과 기억

2020-04-01 2020년 4월호


캠프마켓의 흔적과 기억 

금단禁斷의 땅에서 수집한 박제된 ‘아픔’

그들이 나갔다. 떠나면서 ‘흔적’을 남기고 갔다. 숨기고 싶은 것, 사용할 수 있는 것, 돈 될 만한 것 등은 모조리 가져갔다. 건물은 가져갈 수 없었다. 무기를 만들었던 병기창과 군수품을 쌓아놓았던 창고 그리고 자신들이 머물렀던 막사 등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갔다. 그 안에는 그들의 행적이 파편화돼 흐릿하게 남아 있다. 그 안에는 우리의 아픔도 박제화돼 또렷하게 박혀 있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1939년 부평에 육군조병창을 세우고 매달 소총 4,000정, 탄환 70만 발 등의 무기를 생산했다. 그 땅은 1945년 일제 패망 후 그해 9월 인천항으로 상륙한 미군에 의해 접수되었다. 부평벌에 왜색풍이 한바탕 스쳐 지나가고 양키 문화 바람이 불어닥쳤다. ‘애스컴시티’라는 철조망을 둘러치고 이곳을 80년간 금단禁斷의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글·사진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우리 땅에서 우리는 ‘허가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미 헌병대 군견軍犬 막사 입구.


한글·영문의 각종 표식.



 ‘빵 공장’ 등 부대 내 우편물 분리대.

PX로 사용되었던 1950년대 지어진 퀀셋 건물. 이번에 철거되었다.


부평의 미군 부대는 점차 축소된 채 ‘캠프마켓’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존속되었다. 이제 그 땅은 우리에게 반환된다. 1단계 A, B구역으로 나눠 돌아온 그 땅은 병든 채 우리 품에 안겼다. 부대 내 많은 토양이 다이옥신류로 심하게 오염된 상태다. 이 땅은 활용에 앞서 먼저 치료부터 받아야 한다. 정화 작업을 위해 A구역(부대 북측) 23개 건물 중 16개 동은 허물고 미군 탄약고 벙커, 군견 막사, 초소 등 7개 동만 남긴다. 오염된 토양은 태우기도 하고 씻어내 정화 작업을 할 모양인데 진정한 정화는 우리 가슴에 깊이 박혀 있는 ‘옹이’를 빼내는 것이다.

철거 전 인천시립박물관은 인천시 부대이전개발과와 한국환경공단의 협조를 얻어 모든 건물을 몇 차례에 걸쳐 샅샅이 훑었다. 질곡으로 뒤범벅된 그 땅에서 주둔군의 행적과 우리의 아픔이 오버랩된 ‘흔적’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우리의 시간이 얹혀 있지 않아 낯설었던 그 땅. 한국 근현대사의 응축된 수난사를 품고 있는 그 땅. 그 지층 속에 묻힌 역사의 기억과 흔적 그리고 망각을 끄집어내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어쨌든, 이제 공간 회복과 치유에 대한 첫걸음은 시작되었다. 



 반환 1단계 A구역 철거 현장.



벙커로 지어진 탄약고 입구. 지붕은 흙과 풀로 위장돼 있다.


텅 빈 군수품 창고 내부. 이제 새 빛이 들고 있다.


이곳에서는 맨홀 뚜껑조차 미제Made in USA다.



주차장 바닥 표시. 누가 ‘객’이고 누가 ‘주인’이었던가.



 주유기와 유류 드럼통. 반환된 땅은 기름 범벅이다.



50피트 내에 화기 엄금!! 화학류 탱크는 부대 내 곳곳에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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