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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의 아침

2020-10-05 2020년 10월호

인천 시민의 날과 문학산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신문사죠? 여기 송도인데 뭐가 폭발한 것 같아요!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건물과 차 유리창이 깨지고 난리가 났어요!” 1998년 12월 4일 아침, 걸려온 전화 목소리는 다급했다. 제보자는 송도 어디선가 폭발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정확한 장소는 모르겠다고 했다. 사진부 선배가 카메라를 둘러메고 취재용 지프에 올랐다. 무작정 아암도 방면 해안도로를 달리던 선배는 급히 이동하는 군용 트럭을 보고 직관적으로 ‘저거다’라고 판단, 트럭을 쫓아갔다. 트럭이 도착한 곳은 송도 대우자판 인근 도로. 아니나 다를까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친 채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옥신각신 끝에 통제선을 뚫고 들어간 선배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원통형 쇳덩어리 서너 개를 발견한 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른다. 쇳덩어리는 오발로 발사된 미사일의 추진체였다. 군의 신속한 조치로 공중에서 터져 대참사는 면했으나 수만 개의 파편에 몇 명의 시민이 부상을 입고 120여 대의 차량이 파손됐다. 근무처인 I일보는 석간이었으므로 ‘나이키 미사일 오발’ 특종 사진은 그날 오후 발행한 신문에 보도됐다. 이튿날, 전국의 조간신문들이 선배의 사진을 받아 일제히 1면에 대서특필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다. 문학산 정상에 주둔하던 공군 방공포대가 미사일 장비 점검 훈련을 하다 터진 아찔한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7년 뒤인 2005년, 문학산 정상의 부대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산꼭대기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군사 시설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인천 시민들이 정상을 밟기 시작한 때는 2015년 10월 15일 ‘인천 시민의 날’ 이후부터다. 그러나 이 역시 하루 8~11시간만 허가하는 불완전한 개방이었다. 오는 10월 15일 ‘제56회 인천 시민의 날’부터 문학산 정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17시간으로 늘어난다. 인천시의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요구에 군 당국이 화답한 결과다. 2년 뒤엔 24시간 개방할 것으로 보인다.
문학산(217m)은 인천의 시조 ‘비류’가 세운 백제의 2,000년 건국 설화를 품은 인천의 진산鎭山이다. 문학산의 또 다른 이름은 ‘배꼽산’. 산봉우리의 봉화대가 사람의 배꼽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인데 인천 사람들에겐 친근한 이름이다. 문학산 정상을 빙 에둘러 쌓은 ‘퇴뫼식 산성’인 문학산성은 일찍이 ‘인천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삼국시대 축조한 이 성은 임진왜란 당시 인천부사 김민선金敏善이 백성들과 함께 왜군을 격멸한 ‘승전의 성’이기도 하다.
문학산 정상 개방을 비롯해 인천시는 군사 시설을 ‘시민 친화 공간’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추진해 왔다. 지난해엔 해안 철책선을 걷어내기 시작했고, 부평 미군부대를 반환받았다. 철책선이 사라진 해안은 친수 공간으로 변신 중이며, 미군부대는 이달부터 일부 개방을 시작한다. 산곡동 제3보급단 이전 논의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인천시가 이처럼 군부대 이전에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도심 안 녹색 지대인 부대를 공원이나 문화 공간으로 조성, 시민 품에 안겨주기 위함이다. 코로나19가 다소 사그라지면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골라 문학산을 찾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단 반드시 마스크를 코까지 올려 쓰고, 사회적 거리는 잘 유지해야 할 일이다.



삼국시대 쌓은 인천시 기념물 제1호 문학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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