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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 문화재를 찾아서 ①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

2021-01-11 2021년 1월호


근대건축전시관으로 부활한 일제 식민 침탈 본산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겨울 오후, 화려한 석주(돌기둥) 장식이 돋보이는 건물에 발을 들여놓는다. 손 세정제와 방명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하루에 20명도 안 오시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왔어요.” 안내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해준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중구 신포로23번길 77)에 가면 존스톤 별장, 알렌 별장, 오례당 주택과 같은 지금은 사라진 개항장의 옛 건물들을 볼 수 있다. 1전시실은 개항 이후 인천항의 모습을, 2전시실은 근대건축물의 영상과 사진, 3전시실은 모형과 디오라마, 4전시실은 일제강점기 은행 이야기를 각각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네 곳을 도는 동안 한 세기 전 화려했던 개항장의 모습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인 근대건축전시관의 본래 이름은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이었다. 건물 외관은 화강암과 벽돌·돌·타일과 콘크리트 블록재를 섞어 쌓은 모르타르로 되어 있으며 내부는 붉은 벽돌을 쌓은 모습이다. 110년이 넘은 이 근대건축물은 석조 건물의 외관을 갖춘 고전적 절충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일본제18은행은 일본 나가사키(長崎) 상인들이 1877년 세운 국립은행으로 인천지점은 1890년 10월 해외에 세운 최초 지점이었다. 일본인들은 은행을 세우면서 설립한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은행이름을 지었다. 처음에는 출장소였으나 1903년 지금의 자리에 일본식 모임지붕 형식으로 건축했다. 식민지 조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식민 침탈의 본산이었던 이 은행은 1936년 조선식산은행으로 이름을 바꾼다. 1906년 6월부터 지방에 설립한 6개 농공은행의 권리와 의무를 계승한 조선식산은행은 일본인의 직접적 투자와 경영에 의존하는 대형 개발 은행이었다.


6·25전쟁 이후 이 은행은 상공은행과 신탁은행이 합병한 ‘한국흥업은행’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시간이 흘러 개인이 소유하면서 한때는 ‘열애’란 고급 요정으로, 한때는 중고 가구를 파는 도매상 건물로도 쓰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포동이 인천의 중심지였으므로 근대건축전시관 주변엔 고급 룸살롱과 고급 식당이 즐비했다. 지금은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하나 둘 들어섰으며 문화 공간과 식도락가들을 유혹하는 맛집들이 옛 유흥 주점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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