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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 문화재 이야기 ② 일본우선주식회사

2021-02-01 2021년 2월호

해운사들이 쓰던 건물,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짝’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돌을 깎아 만든 공자상이 서 있고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긴 층계가 나 있는 비탈길. 인천항을 등진 채 공원을 바라보면 왼쪽은 차이나타운, 오른쪽은 중구청 방면이다. 1880년대 이 비탈길을 경계로 좌측 땅은 중국인들이, 우측 땅은 일본인들이 차지했었다. 정작 땅 주인인 조선인들은 지금의 동구 쪽으로 밀려났다.
비탈길 입구, 타일로 마감한 사각형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인천아트플랫폼 관리사무동’(인천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이다. 출입구 윗부분은 삼각형의 장식물인 페디먼트pediment로 한껏 멋을 부렸고, 출입구 양쪽 2개의 기둥이 안정적이고 견고한 인상을 준다. 세로로 길게 낸 직사각형 창문과 그 앞 철재 장식도 이국적이다. 정면에서 보면 사각형이나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운데가 솟은 ‘모임지붕’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의 건축양식을 모방한 ‘의양풍’의 이 건물은 건립 당시 붉은 벽돌로 마감한 겉모습만 아이보리 타일로 바뀌었을 뿐, 12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켜왔다. 고색창연. 건물을 바라보노라니 ‘건축은 마감으로 완성되나 시간은 다시 건축물을 마감한다’는 어느 건축가의 말이 떠오른다. 건물 안 관장실, 사무실, 회의실, 관리실 4개의 방에선 지금 인천문화재단 소속 직원 16명이 근무 중이다. 이 건물은 ‘국가등록문화재 제248호’로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이었으며 지금은 인천아트플랫폼 13개 동을 관리하는 사무실로 쓰고 있다.
일본우선주식회사는 1890년대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움직인 ‘기선’으로 쌀과 잡화를 수송한 해운사였다. 조선의 해운업에 군침을 흘리던 이 회사는 1894년 조선 해운사인 ‘이운사’ 위탁 관리를 시작으로 조선 항운업을 독점하며 회사를 키워나간다. 이후 미쓰비시(三菱) 인천지점, 굴기선 회사 등으로 이름을 바꾸긴 했으나 계속해서 같은 업종의 해운사들이 건물을 사용했다. 광복 이후에도 대한통운 창고, 대진상사, 동화실업주식회사, 천신항업, 대흥공사 등 해운업을 하는 회사들이 이 건물을 거쳐 갔다. 처음 건축될 당시 바로 앞이 갯벌이었으나 매립 이후 부두가 생겼고 큰길(제물량로)이 놓였다.
한동안 비어 있던 공간에 다시금 사람들의 온기가 번지기 시작한 때는 2000년이다. 인천시는 당시 주변 다른 창고와 함께 건물을 매입한 뒤 리모델링을 통해 전시장과 공연장, 교육 공간과 아카이브를 갖춘 인천아트플랫폼을 조성했다. 시는 2009년 인천아트플랫폼을 개방한 이래 지금까지 예술가들의 창작·거주 공간으로 제공해 왔다. 개항기 근대건축물을 훼손하지 않고 역사·문화 공간으로 피워낸 인천아트플랫폼 사업은 도시 재생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오래된 건축물과 새로운 건축물이 공존하는 도시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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