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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 문화재 이야기-④ 전등사

2021-03-30 2021년 4월호


보물 등 문화재 21점 품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사찰


2021년 봄 전등사 대웅보전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傳燈寺는 삼국시대인 381년 아도화상이 지금의 자리에 진종사眞宗寺란 이름으로 창건한 절이다. 이후 1,600여 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고最古 사찰’로 빛나고 있다.
전등사로 이름을 바꾼 때는 1282년 고려 충렬왕(25대)의 비인 정화궁주가 옥등을 시주하면서부터다. 궁주는 몽골에 볼모로 끌려간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며 옥등과 함께 대장경을 봉안한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대웅전(보물 제178호)을 비롯해 약사전(보물 제179호), 철종(보물 제393호) 등 전등사는 보물만 6점을 품고 있다. 여기에 사적 1점과 현왕탱(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3호), 법화경판(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5호) 등 시 유형문화재 7점, 유형문화재 자료 3점, 인천시기념물 3점, 현충 시설 1점 등 무려 21점의 문화재를 보유한 ‘보물 사찰’이다.
대웅전은 1605년 절반이 불에 탔던 것을 1614~1621년 다시 지은 것이라고 <양간록>은 전한다. 대웅전의 처마 밑 4개의 기둥 모서리엔 두 손으로 처마를 힘겹게 받치고 있는 인형들이 있다. 나부상裸婦像이라 불리는 이 인형들엔 ‘슬픈 로맨스’가 깃들어 있다. 대웅전을 짓던 도편수(목수)는 사찰 아래 숙식을 해결하던 주막에서 만난 주모를 사랑하게 되었다. 믿고 사랑한 나머지 전 재산을 맡겼는데, 어느 날 주모가 돈을 몽땅 갖고 도망가자 평생 처마를 떠받치고 살라는 체벌의 의미로 새겼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렇지만 나부상의 표정이 익살스러워 원숭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전등사를 오르려면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을 지나가야 한다. 정족산성이라고도 부르는 이 산성은 병인양요(1866) 당시 승려, 의병, 관군이 힘을 합해 프랑스군을 물리친 유적지다. 대웅전과 약사전에 무수한 병사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동문 앞에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서 있는 까닭이다.
병인양요 당시 전등사 스님들은 경내 정족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문서를 토굴로 옮겨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다. 정족사고의 ‘장사각’은 실록을, ‘선원보각’은 <선원세보>를 비롯한 왕실 족보 등을 각각 보관하던 곳이다. 전국 4대 사고 가운데 가장 방대한 실록과 왕실 서적을 관리하고 있었다. 정족사고의 서적들은 일제강점기 때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옮긴 이래 규장각이 지금까지 1,181책을 보관 중이다. 정족사고는 불에 탔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이따금 전시 등의 행사가 열린다. 전등사는 사찰에 있는 건축물과 유물, 유적지 전체가 보물이고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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