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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케치에 비친 인천 - 강화도 장화·내리

2021-11-29 2021년 12월호


노을, 빛으로 떠오르다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는 한 해가 저물어갈 즈음 강화도 가는 길과 다다른 남쪽 마을을 김정아 작가가 그렸다. 다난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내일 더 행복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뱃길 따라 강화로Ⅰ, Ⅱ 297 x 210(mm)_종이 위 채색_2021 한 해의 끝자락, 강화도 남쪽 끝으로 달려간다. 

오늘 지는 노을은, 내일 태양으로 더 찬란히 떠오를 것이다.

그림 속 조형물이 뱃길 위에서 올라탄 건 ‘강화 순무’

강화도 남쪽,

해 지는 마을로
모두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묵묵히 버티며 잘 살아냈다. 한 해의 끝자락, 강화도 남쪽 끝으로 달려간다. 그 섬, 그 바닷가엔 햇살보다 아름다운 노을이 내린다. 그 빛은 내일 태양으로 더 찬란히 떠오를 것이다.


강화도 화도면 장화리 ‘해넘이 마을’. 바다와 땅, 삶이 만나 빚어낸 길 위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이연숙(60) 씨는 화도면 최초의 여성 이장이다. 41 대 34, 6년 전 일곱 표 차이로 처음 마을 대표가 됐다. 토박이도 남성도 아닌 그가 이장으로 선출되자, 작은 시골 동네는 잠시 술렁였다. 하지만 마을 일이라면 언제든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서고, 어르신들을 부모처럼 따르고 때론 돌봐온 그다. 부녀회장 일도 6년이나 맡은 책임을 다해왔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IMF 파고에 휩쓸려 인천 도심에서 섬으로 흘러들어왔다. 언젠가 찾은 강화도 남단, 노을빛 불그름히 물든 바다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 빛이 결국, 이 안에 머물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해넘이 마을에서의 삶은 봄에서 여름, 가을에서 겨울로 흐르듯 순조롭고 평화로웠다. 물론 섬 생활이 처음부터 평탄했던 건 아니다. 예서 나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는 이방인이었다. 낯선 사람으로 밀어낼수록 이웃으로 더 가까이 다가섰다. 24년이 지난 지금, 그는 온전한 장화리 사람이다. 이장 아닌가. 어느 집 수저가 몇 개인지 알 정도로 동네 돌아가는 사정도 훤히 꿰고 있다.
“어르신들께서 ‘우리 이장 잘한다’라고 칭찬할 때가 가장 기뻐요. 우리 마을에 100살에서 한 살이 모자란 최장수 어르신이 계신대, ‘동네에서 제일 바쁜 이장, 건강하지?’라고 말을 건네곤 하세요. 그러면 얼마나 반가운지요.” 초겨울, 따스한 햇살 아래 그의 미소가 빛난다.


‘해넘이 마을’에서 만난 이연숙 장화2리 이장. 화도면 최초의 여성 이장이다.


강화도 남단 바닷가에는 햇살보다 아름다운 노을이 내린다.


할머니의 골목길 297 x 210(mm)_종이 위 채색_2021 해가 지려면 아직 긴 시간이 남았다.

마을을 감싸 도는 좁은 길을 따라 걷는다. 그 길엔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인 역사가 흐른다.

고택을 지키는,

나이 든 어머니와 딸
해가 지려면 아직 긴 시간이 남았다. 마을을 감싸 도는 좁은 길을 따라 걷다, 고풍스러운 가옥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강화도 천석꾼 집안이었던 ‘주 진사 댁’이다. 이 집은 백범 김구 선생과 인연이 맞닿아 있다.
‘유완무의 제자인 강화 장곶에 있는 주윤호 진사를 찾아갔다. 주진사는 백동전 4,000냥을 유 씨에게 보냈는데, 나는 그것을 온몸에 돌려 감고 서울로 왔다. 주진사의 집은 해변이었으므로 11월인데도 아직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었다. 또한 해산물이 풍족해 몇 날을 잘 지내고 왔다.’
- 김구 <백범일지> 중에서

1900년 김구가 탈옥 후 숨을 고르던 집엔, 오늘 주윤호의 형 주윤창의 첫째 증손자며느리 김옥동(91) 할머니가 산다. “우리 집은 뼈대 있는 가문이야. 옆 동네 내리부터 강화읍까지 아우르는 천석꾼을 자랑했지. 그러니 독립운동 자금도 내놓지. 그 옛날 4,000냥이면 아주 큰돈이야. 재산이 있어 나라를 도울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아.” 대를 이어갈수록 살림은 기울었지만, 주씨 가문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풍요롭다.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다 간, 해넘이 마을 ‘주 진사 댁’

이 오래된 집엔, 여전히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주윤창의 첫째 증손자며느리 김옥동과 그의 막내딸 주향숙


이 집에서 머문 세월이, 자그마치 70년이다. 눈뜨고 잠들기까지 어르신들을 모시고,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둘째 아들을 포함해 일곱 자식을 건사하며 바지런히 살아왔다. 스물둘에 시집와서 어느덧 강산이 아홉 번 변했다. 그 시절 유난히 큰 키에,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던 강인한 어머니는 아이처럼 작고 연약해졌다. 허리가 휘고 주름이 깊게 패어 갔다. “우리 엄마 꽃분홍색 옷 입으니, 더 곱다. 참 예쁘네.”
오늘 아흔이 넘은 노모 곁은 막내딸이 지키고 있다. 주향숙(55) 씨는 바다 건너 필리핀에서 24년을 살다 2년 전 어머니 품으로 왔다. 평생 고생스럽게 살아온 삶일지라도 봄날은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마저도 소중해 보내기 아쉬워, 딸은 한사코 나이 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는다. ‘눈 감는 날까지,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사세요. 엄마, 우리 엄마.’
‘백범 김구 선생이 다녀간, 강화 장곶 주 진사 댁’. 세상 사람들에게는 역사적인 공간일 뿐이지만, 이 오래된 집엔 여전히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그 삶은 켜켜이 쌓이고 쌓여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올해도 힘들었지만, 열심히 잘 살아냈다.

바다에 마음을 꺼내두고 시름을 날려보낸다.

갑자기 불어닥친 어려움도, 세찬 바람 속 차가워진 기온도
하나도 원망스럽지 않다. ‘내일, 더 행복하기를’.



강화도 화도면 장화리 ‘해넘이 마을’.

꾸밈없이 수수한 풍경, 그 안에선 시간도 더디게 흐른다.

그리움으로 남을

섬의 시간
바로 옆 동네 내리. 노을빛은 장화리에 못 미치지만, 서쪽 바다답지 않게 항상 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그 풍경에 반해 13년 전, 만수동에 사는 한 노부부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집을 지었다. 은퇴가 늦어지면서 지금은 아들 장시열(36) 씨가 공간을 보듬고 있다.
그는 4년 전, 이탈리아어로 일몰이라는 뜻의 ‘트라몬토Tramonto’라는 이름을 단 카페 문을 열었다. 강화도를 찾는 수많은 여행자가 이 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쉬었다 간다. 그렇게 저마다의 사연이 머물다 간 자리엔 웃음이 묻어나고 눈물이 배어난다. 오늘은 멀리 부산에서 온 부부가 찾았다. 석모도 온천 여행의 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부산에서 인천 강화도까지 차로 일곱 시간을 달려온 긴 여행길,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즐겨 다녀요. 지역마다 고유한 멋과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죠. 인천 강화도의 가장 아름다운 면은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싶어요. 자연이 맑고 깨끗하고, 사람들도 순수하고 따뜻해요.”
바다를 바라보는 부부는 말이 없다. 올해도 힘들었지만, 열심히 잘 살아냈다. 바다에 마음을 꺼내두고 따뜻한 차 한잔에 시름을 날려보낸다. 갑자기 불어닥친 어려움도, 세찬 바람 속 차가워진 기온도 하나도 원망스럽지 않다. ‘내일, 더 행복하기를’. 시시각각 빛을 달리하는 하늘, 그리움으로 남을 섬의 시간이 저물어간다.




내리의 카페 ‘트라몬토’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 부부.

멀리 부산에서 일곱 시간을 차로 달려 강화도로 왔다.

수고했어 2021, 장화리 297 x 210(mm)_종이 위 채색_2021
“강화도 노을도 보고 마니산 기를 받아서, 2022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면 좋겠어요.”
어제보다 오늘 또 내일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내일
겨울, 섬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세상이 검기울고, 살갗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차가워졌다. 이장과 동네 아낙들이 장화리 바닷가로 모여든다. 모두 일곱 명. 마을 주민의 생일을 맞아 계모임이 있던 터였다. 나이 제일 많은 ‘왕언니’가 일흔일곱, 막내여도 예순둘. 돌아가면서 태어난 날을 축하하고 따뜻한 밥 한 끼 사 먹는 게 이들 사는 즐거움이다.
“다들 노인네인데, 여태 일하고 살아요. 오늘도 고구마 고르고 깨 털고, 모두 농사짓다가 모였어요. 하루라도 즐겁게 보내고, 내일 또 힘내서 일하자고.” “이게 잠깐이지, 어디 하루 쉬는 거냐? 난 오후 다섯 시나 돼서야, 겨우 밭에서 집으로 왔어.”
최창란(71) 씨와 박영순(77) 씨의 오가는 말속엔 웃음이 섞여도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이 마을에서는 나고 자랐든 멀리서 왔든, 나이가 몇이고, 무슨 벌이를 하든 중요치 않다. 누구나 함께 어울리고 마음을 나눈다. 최 씨는 4년 전, 푸른 물결에 봉긋 솟은 ‘병아리 섬’에 반해 멀리 일산에서 왔다. 연정흠(71) 씨는 스물세 살 때 마음 조이며 강화읍에서 시집왔다. 도시에서 산골짜기로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마음을 붙잡은 건 그때도 지금도 바다다. 큰언니 박 씨는 이 동네 토박이다. 가무락을 쓰레질하듯 담고, 새우며 숭어, 낙지, 꽃게… 바다에 없는 게 없던 시절부터 섬 아낙의 삶을 짊어지고 살았다. 평생 손에 물이 마를 날 없었지만, 그 덕에 자식 다섯 다 밥해 먹이고 공부도 가르쳤다. 여기 사람들은 다 그러고 살았다.


해가 진다. 노을 진 수평선 사이로 섬들이 아스라하다. 이내 검은 바다가 출렁인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분명한 건, 어제보다 오늘 또 내일 더 나은 미래가 열린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시시각각 빛을 달리하는 하늘, 그리움으로 남을 섬의 시간이 저물어 간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해 질 무렵, 장화리 바닷가로 모인 이장과 동네 아낙들. 함께 어울리고 마음 나누며 사는 게, 이들 사는 즐거움이다.


그림 김정아
인천 출신의 청년 작가.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지역 예술 강사로 세상과 소통하고, 꾸준히 작품을 그리며 따스한 시선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강화도 레지던시’에 참여해 작업한 결과물을 올해 ‘Strong 강 Fire 화 Road 길’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전시했다. 그 흐름을 이어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간다’는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17일까지 ‘엄마와 딸이 만드는 두 번째 여정’이라는 주제로 ‘인천 스페로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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