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역사

인천 문화재 이야기 ⑱ 팔미도등대

2022-05-31 2022년 6월호


‘인천상륙작전’ 길잡이였던

우리나라 근대식 등대의 효시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 | 사진 유승현 포토  디렉터



“9월 14일 밤 12시 정각에 등대를 밝혀라.”
1950년 9월, 비밀리에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도쿄(東京) 유엔군총사령부는 한국 부대 ‘켈로(Korea Liasiom Office, KLO)’에 등대 점화 명령을 하달한다. 영흥도를 중심으로 첩보 활동을 벌였던 켈로 부대가 팔미도에 들어가 등대 활용 여부를 보고하자마자 내려진 조치였다.
켈로 부대원들은 비밀리에 팔미도에 잠입해 그 시각 등대에 불을 밝혔고, 이튿날 새벽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10만 병력과 대함대는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한다. 이를 계기로 북한군에 밀리던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됐고, 13일 만에 서울을 탈환한 국군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큰 역할을 한 ‘팔미도등대’(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0호)는 인천항에서 15.7km 떨어진 남쪽 섬 팔미도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다. 일제의 강요로 1902년 해관등대국을 설치한 조선 조정이 1903년 6월 팔미도등대를 완공한 이래 바다를 오가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건립 100주년이던 2003년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팔미도에 기념 등대와 조형물을 설치했으며, 현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면 등대탑방·숲·전망대·해변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해돋이와 해맞이도 볼 수 있다.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홍보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4
  • 최종업데이트 2024-01-10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