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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골목길 TMI-‘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

2022-08-01 2022년 8월호


백범의 흔적 선연한

‘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



골목에서,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켜켜이 쌓인다. 백범 김구가 탈옥해 울분을 삼키며 걸었던 그 길. 중구 내동 ‘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이하 청년 김구 거리)엔 우리나라 독립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개항과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역사가 퇴적층처럼 쌓여 있다. 골목길 TMI가 백범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길 위에서 오늘의 사람들을 조우했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이주흠 포토 디렉터


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 전경


백범 김구 선생이 인천과 연을 맺은 때는 1896년. 그 시작은 어둡고 참혹했던 인천의 감옥소에서 시작된다. 국모의 원수를 갚겠다며 일본 장교를 살해한 청년 김창수는 해주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 1896년 8월 인천 감리서로 이송돼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곳에서 청년 김창수는 민족 지사志士 백범 김구로 다시 태어난다.


백범의 발자취를
거닐고, 알리다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다.”(<백범일지> 중) 오늘,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이 선연한 인천 감리서 터 맨 꼭대기엔 그와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이 오롯이 서 있다.
길을 내려가다 청년 김구 거리를 스케치북에 담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만났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조형물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신흥여중 이윤희(42) 교사는 “내가 사는 곳을 바로 알고 알리는 ‘책마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년 김구 거리를 알리는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해줬다.
김보경(13) 학생은 “책이나 교과서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김구 선생님과 인천의 인연을 잘 그리고 싶다”며 스케치에 열중했다. 김채은(14) 학생은 “거리 스케치를 하며 김구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인천에 대한 자부심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니 누군가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동상 곁에 선다. 꺄르르, 아이들의 시원한 웃음 소리가 한낮의 더위를 식혀준다. 김구 선생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책마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년 김구 거리를 알리는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신흥여중 학생들


개항기 가옥에서
역사를 기리고
기록하다

김구 동상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고풍스러운 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서담재書談齋. 1935년에 지어진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화랑 카페다.
서담재는 예술 공간이자 카페, 인문학 서당, 역사 연구소로 시민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이 길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잖아요. 역사를 증명하는 이곳을, 평소 무심하게 지나쳤던 역사를 느끼고 생각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이애정(59) 관장은 서담재를 인천 역사를 사유하는 공간으로 꾸며가고 싶다고 했다.
최근 청년 김구 거리의 의미를 되새기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천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인하대학교 김창수 교수와 윤종필 작가가 동참, 시민들과 함께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판화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김창수(63) 교수는 ‘해주 청년 김창수’가 ‘애국 계몽 운동가 김구’로 다시 태어난 곳이 바로 인천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개항장의 신문화를 접하고, 감옥에서 <태서신사>, <세계지지> 등을 읽으며 ‘조선의 의인이라면 마땅히 신학문을 배워 국가와 국민을 새롭게 할 것이니, 선진적인 것을 받아들여 우리 힘을 길러야 한다’ 깨달음을 얻습니다.”
<백범일지>의 기록처럼 청년 김창수에게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다.


1935년 지은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화랑 카페, 서담재



서담재의 다섯 번째 주인 이애정 관장



인문학 강의를 진행 중인 인하대학교 김창수 교수


역사거리에
새로움을 덧대다

단 한 번도 조국 광복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백범 김구. 그의 발자국이 선연한 청년 김구 거리에서 인천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한적한 거리를 새벽까지 밝히는 일식당 ‘물고기’는 10년 된 이 골목의 터줏대감이다. ‘모리아와세(제철 모둠 사시미) 특선’으로 입소문이 나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온다. 그도 그럴 것이 정연수(50) 대표가 새벽마다 수산시장을 찾아 까다롭게 고른 싱싱한 해산물을 공수해오기 때문이다. 건물은 인사동 쌈지길 아트 디렉터로 잘 알려진 이진경 작가의 작품으로 꾸몄다. 그림 같은 한글 간판부터 예사롭지 않다. “별 욕심은 없고요, 삶이 힘들고 각박할 때 생각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물고기’는 맛도, 인테리어도, 사람도 꽤 예술적이다.
최근 문을 연 ‘갤럭시BB’는 ‘월미’, ‘코알라파이’, ‘두올도넛’ 등 개항장에 여러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손성찬(34) 대표의 카페다. 돌계단, 마당, 서까래… 고택의 뼈대를 최대한 살려 마당에 들어서면 교외로 훌쩍 떠나온 느낌이 든다. “100년 정도 된 건물이에요. 벽지를 여러 겹 뜯어냈는데 천장 가득 1920년대 일본 신문이 붙어 있었어요.” 그가 개항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갤럭시BB가 만냥짜리면, 이 골목의 지분이 구천냥쯤이에요. 청년 김구 거리가 서울의 해방촌이나 도산대로 같은 특별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브런치 카페 ‘갤럭시BB’의 손성찬 대표



‘갤럭시BB’ 안마당에서 보이는 김구 선생 조형물



‘물고기’에서 내려다본 청년 김구 거리

개항장의 중심, 내동 83번지

1883년 1월 1일(음력) 조선 정부는 인천도호부 서쪽의 작은 포구, 제물포(인천항)를 개항했다. 몇 척의 어선만이 드나들던 제물포 나루터는 무역을 위해 입항하는 외국 기선의 정박지가 되었고, 상인과 부두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개항장이 되었다. 조선은 출입국 사무와 개항장의 질서 유지를 위해 인천 감리서를 설치했다.
중구 내동 83번지. 스카이타워아파트에서 성신아파트에 이르는 언덕은 인천 감리서 자리다. 조선의 객주 상인들은 이 일대에 가게를 열어 조계지의 외국인과 거래하며 부를 쌓아갔다. 민족 은행인 대한천일은행, 우체사, 전신사 등 관청은 물론 교회, 성당도 들어서 내동 일대는 명실상부 개항장의 중심이 되었다.
중구청은 지난 2020년부터 인천 감리서 터에서 신포동오거리에 이르는 거리를 ‘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로 조성했다. 김구 선생이 옥고를 치른 감리서, 탈옥한 길, 강제 노역한 축항 등도 고증을 거쳐 테마 거리로 꾸밀 계획이다.



‘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 주요 장소
# 물상객주 골목, 월아천

백범의 첫 인천 수형 생활을 도와준 것은 물상객주들이다. <백범일지>는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객줏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옥바라지를 했다고 전한다. 인천 감리서 터 뒤편에 남아있는 건물은 지금 ‘월아천’이라는 음식점 간판을 달고 있다. 솟을대문과 중문이 있고 본채, 사랑채, 능소화가 수려한 꽃담으로 이뤄진 가옥이다.
# 평화의 언덕 위, 천주교 답동성당
<백범일지>에는 당시 선생이 탈옥한 동선을 추정할 수 있는 지명이 몇몇 등장한다. “하늘이 밝아오고 천주교당의 뾰족집이 보였다. 그것이 동쪽이리라 짐작하고 걸어갔다.” 감리서 뒤쪽 용동 마루터기에서 이정표가 되어준 것은 인천 최초의 가톨릭 건축물인 답동성당이었다.
# 청년 김창수를 지킨, 조선의 옛길
“나는 탄탄대로로 나왔다. 내 길을 막는 자가 있으면 결단을 내버릴 마음으로 쇠창을 손에 들고 정문으로 나갔다.” 1898년 3월 9일 밤, 나이 스물셋의 청년 김창수는 인천 감리서를 탈옥한다. 용동 마루턱을 넘어, 싸리재를 지나 율목도서관쯤에서 방향을 잡는다. 구불구불 비탈진 원도심의 골목은 청년 김창수를 지킨 조선의 옛길이다.
# 선생의 피와 땀이 밴, 내항 1부두
“힘들어서 바다에 떨어져 죽고 싶었으나, 그러면 같이 쇠사슬을 맨 죄수들도 함께 떨어지므로 할 수 없이 참고 또 참았다.” 백범 김구는 ‘안악 사건’으로, 서울에서 옥살이를 하다 1914년 인천 감리서로 이감된다. 이때 인천 내항 1부두인 축항 공사장에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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