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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천의 아침 - 칼럼

2023-01-09 2023년 1월호


인천 미술과 뮤지엄파크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


‘경관의 기억’ 조감도

구수한 큰 맛, 무기교의 기교, 민예적인 것. 한국미술의 근대적 학문 체계를 세운 인천 용동 출신 우현 고유섭은 한국미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했다. 우현은 황무지였던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사 안에서 ‘한국의 미’를 발견해 개간한 인물이다. ‘미학의 역사 개관’(1930), ‘금동미륵반가상의 고찰’(1931), ‘조선탑파의 개설’(1932), ‘고려의 불사건축’(1935) 같은 논문을 발표하며 ‘한국미의 정체성’을 찾아낸 미술사학계의 비조鼻祖로 통한다.
우현을 비롯해 장발, 김은호, 유희강, 이경성, 김영건, 우문국, 박세림, 황추 등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미술사에서 큰 획을 그은 미술 거장을 무수히 배출輩出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콜롬비아대학교에서 미술 이론을 공부한 장발은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익힌 뒤 가톨릭 성화로 이름을 날렸다. 일제강점기 단절될 뻔했던 한국 초상화의 정맥을 이은 김은호는 약관의 나이에 조선 역대 황제 어진을 봉사封事하기도 했다.
인천 출신 조규봉은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귀국해 1946년 2월 ‘조선조각가협회’ 결성을 주도하고 평양미술학교 강좌장을 지냈다. 폭넓은 한문학적 소양으로 초기 국전을 석권하고 오른손을 못 쓰게 되자 왼손 글씨 세계를 구축하며 현대 서단의 신화적 존재로 남은 검여 유희강 역시 인천 서곶 출신이다. 인천 화평동에서 태어난 석남 이경성은 우리나라 최초 국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을 주도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임영방도 인천 사람이다. 인천은 이처럼 동·서양화에서부터 서예, 조각, 미술사는 물론 미술 행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걸출한 미술인을 많이 키워낸 ‘미술도시’인 것이다.
이 같은 인물적 배경을 바탕으로 인천은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를 견인해 왔다. 1945년 인천시 중구 내동 금융조합 2층에서 열린 ‘해방기념 미술전’을 시작으로 1950~60년대 ‘앙데팡당전’, 1960~70년대 ‘오소회전’ 같은 전시를 통해 미술도시의 명맥을 이어왔다. 1980년대엔 ‘현대미술상황전’이 모더니즘 미술운동을 이끌었으며, ‘지평전’을 통해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등 시대적 요구에도 적극적인 태도로 부응해왔다.
인천시립미술관이 들어설 우리나라 첫 문화복합시설 ‘인천뮤지엄파크’ 밑그림이 나왔다. 지난해 말 국제설계공모 결과 ‘경관의 기억Memories of Landscape’이란 작품이 선정된 것이다. 경관의 기억은 인천뮤지엄파크 대상지의 변천 과정뿐 아니라 원래 지형까지 아우르는 명확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는 게 중론이다. 물과 땅, 과거와 미래 등 다양한 경계를 세심하게 계획하며 인천의 가치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천뮤지엄파크는 미술관·박물관·예술공원을 갖춘 전국 최초의 복합문화시설로 2024년 공사를 시작해 2027년 5월 개관한다. 미추홀구 학익동 일대에 2,014억 원을 들여 연면적 4만 1,812m2 규모로 지어진다.
선이 굵은 미술가들을 배출하며 우리나라 근대미술사를 이끌어온 인천에 들어설 시립미술관은 ‘미술도시 인천’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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