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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영승의 시선(詩선)

2021-11-29 2021년 12월호


추억



조병화趙炳華 ; 1921-2003)


잊어 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 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 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글 김영승


 모든 추억은 일방적이다. 나의 졸시 ‘일방적인 추억’이라는 시도 있지만, 가령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보로우의 추억’의 가사 “그녀는 진정한 나의 사랑이었네” 운운하는 회상도, 그리고 은희의 ‘꽃반지 끼고’라는 노래의 가사 “생각난다 그 오솔길” 운운도, 정작 그 당사자는 몰라? 하고 부인할 지도 모른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운운하는 박인환 사망 직전에 썼다는 그 시 ‘세월이 가면’도, 아니 그 눈동자에 입술이 내 가슴에 있는데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했었지만, 이해가 간다. 
 이 시는 그가 인천중학교(제물포고등학교) 재직 시절 자비로 출판한 시집 <버리고 싶은 遺産>(산호장, 1949)에 수록된 시다. 생전에 그를 혹독히 비판했던 평론가는 당시 서울대 영문과 교수였던 김영무(金榮茂 ; 1944-2001)인데, 관념어 남발 등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그를 거의 ‘댄디스트’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그의 그 쉬운 시들이 이토록 긴 생명력이 있을 줄이야.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걷는 사람들. 뭘 잊어버리자고.
 그가 걸었던 그 바다 기슭은 어디쯤일까. 조병화는 여전히 그렇게 걷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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