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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트렌드 인천 2023 ② 취미 더 머니

2023-02-01 2023년 2월호

취미가 밥 먹여주는

 ‘덕후御宅’ 전성시대


‘덕후’들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한때는 취미에만 몰두하는 괴짜를 가리켰지만, 요즘은 한 분야에 남다른 실력을 갖춰 놀라운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20대 청년 10명 중 8명은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는 ‘덕업일치’의 행복을 꿈꾼다는 조사 결과도 이를 방증한다. 은퇴 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투자하는 ‘중년 덕후’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우호적이다. 이번 호에는 좋아하는 취미와 지식에 몰두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 디렉터


생활문화센터 ‘507문화벙커’에서 꿈을 펼치고 있는 방지희 씨


드럼 연습이 가능한 방음부스

액티브 시니어의 반격, ‘취미에 진심’
507문화벙커 생활문화센터. 인도 한가운데 빼꼼히 드러난 유리문을 열고 지하도로 내려서니 사방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퉁탕퉁탕 챙그랑.’ 방음 부스에서는 드럼이 울리고, 부드러운 손풍금 소리와 중창단의 화음이 긴 복도를 가득 채운다.
그 소리의 세상에서 걸어 나온 방지희(67) 씨는 ‘알프스 소녀’ 같은 원피스를 입고 청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2년 전쯤, 507 문화벙커에 와서 행복했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20대 때 요들에 빠져서 김홍철 선생님이 공연하는 카페에서 살았어요.” 1968년 데뷔한 김홍철은 ‘한국 최초의 요들러’이자 ‘한국 요들의 대부’다. “함께했던 친구들을 불러모아 ‘에델바이스 요들 클럽’을 결성했어요. 젊어서는 가정에 얽매여 못 했다면 이젠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잖아요.”
그 후 문지방이 닳도록 507 문화벙커를 들락거렸다. ‘생활예술 동아리 한마당’, ‘씨페스타’, ‘온스테이지 동아리 네트워크’ 등에서 창작 무대에 서고 ‘아코디언 지도자 자격증’을 딸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아이들에게 요들송도 알려주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많아져요. 꿈이 생기니 매일매일이 설레요.” 그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아침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다.




퇴직 후 평리단길에 에스프레소 바를 차린 조광환 씨


2년 전 부평 문화의 거리(평리단길)에 에스프레소 바를 차렸다는 조광환(70) 씨는 은퇴 후 취미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LP판을 모으는 취미도 있어 음악 감상실을 차리고 싶었지만, 그가 내린 커피를 맛본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마에스트로 커피 랩’을 열었다. “노년은 청춘에 못지않은 좋은 기회입니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평생 취미를 찾아보세요.”



 

인천 청년 윤서연 씨의 부지런한 취미, 다꾸


온라인이 바꾼
‘취미 생활 지형도’

인천 청년 윤서연(27) 씨는 자신만의 다이어리를 꾸미는(이하 ‘다꾸’) 것이 취미인 ‘다꾸족’이다. 색색의 형광펜은 기본, 커팅이 안 된 스티커인 ‘인쇄소 스티커’, 메모지 묶음인 ‘떡메모지’, 포토 프린터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일상을 부지런히 기록해 왔다.
2년 전부터 인스타그램 계정(@life_with_records)을 통해 다꾸족과 소통하며 그의 삶은 기적처럼 달라졌다.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그의 디자인을 선호하는 팬층이 생겼고, 한 업체의 요청으로 다이어리 속지를 디자인해 판매할 기회가 생겼다. 내친김에 그는 문구 브랜드 계정 ‘오브레코드’를 열었다.
모닝 메모지, 독서 스티커 등 그의 ‘부지런한 취미’가 ‘기록을 돕는 상품’이 됐다. “가벼운 기록을 쉽게 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 다이어리 쓰기와 관련된 영상도 올리려고 준비 중이에요.”


  

‘아이디어스’에서 수채화를 그려 판매하는 김혜진 씨


온라인 취미 생활 플랫폼, 핸드메이드 마켓 ‘아이디어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 등도 성장세다. 현재 아이디어스와 텀블벅에서 활동 중인 작가와 창작자는 6만 명에 달한다.
김혜진(32) 씨는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일하는 틈틈이 아이디어스에서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손에서 붓을 놓은 적이 없어요.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하곤 했어요. 소소한 취미가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 된다니 뿌듯해요. 고객을 위한 그림을 그리며 작품에 대한 태도도 더 진지해졌어요.”


마라톤, 플로깅 등을 통해 러닝의 즐거움을 알리는 전동석(왼쪽) 씨


좋아하는 일=직업,
덕업일치

전동석(36) 러닝 인플루언서(@jeon_ds)는 “좋아하고, 잘하는 일, 그것의 가치를 찾았다면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감각은 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더 연구하고 자신만의 경력을 쌓아야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국내 1호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47)는 어려서부터 레고 마니아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월급의 반을 쏟아부을 만큼 레고에 진심이었다. “블로그에 제 작업물을 기록하곤 했어요. 그걸 본 전시 관계자한테 출품 제의 연락을 받았죠. ‘스팀펑크아트전’이라는 전시를 준비 중인데, 제 작품이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요.” 그는 첫 전시 후 과감히 회사를 그만뒀다. 올해로 브릭 아티스트 10년 차. 전국을 종횡무진하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클래스를 운영하는 등 ‘브릭 아트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최근엔 시청 앞 인천애뜰에 폐블록을 활용한 작품을 만들어 전시 중이다. 무려 600kg의 폐블록으로 시민들과 합작한 ‘교감’이라는 작품이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는 게 꿈”이라는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작고 네모난 세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 중이다. 빡빡한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승부를 건 덕후들, 성공한 덕후의 뒤에는 치열한 열정과 노력이 있다.



지난해 가을 인천애뜰에 작품을 설치 중인 진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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