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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계 초일류도시를 가다 ① 일본 요코하마

2023-03-02 2023년 3월호


창의력이 곧 도시 경쟁력

창조도시의 대표주자,

요코하마

‘문화와 예술의 창조성을 토대로 산업과 고용, 교육, 의료, 복지, 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도시 공간에 조화롭게 구축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새로운 도시개발의 담론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도시 이론을 ‘창조도시론’이라고 한다. 21세기 국가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이며, 나아가 문화가 ‘지역의 경쟁력’이라고도 한다. 이 같은 창조도시로 성장한 세계적 도시를 찾아 그 사례를 살펴본다.


글 남승균 인천대학교 지역동행플랫폼 전문연구원



문화가 지역의 경쟁력을 이끈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세계적 생태환경 연구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세계적으로 획일화된 경제와 소비문화는 빈곤을 창출한다. 이러한 행복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지역화, 지역 문화를 살리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했다. 대량생산은 대중문화를 탄생시켰으며, 대중문화는 소비의 세계화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환경을 파괴했으며, 이러한 환경 파괴로 문화의 다양성도 사라지게 되었다.
사사키 마사유키는 1990년대 중반 저서 <창조도시와 경제학>에서 창조도시를 “문화와 산업의 창조성을 풍부하게 하며 동시에 탈대량생산의 혁신적이고 유연한 도시경제 시스템을 갖춘 곳이다”라고 정의하며,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와 지역사회가 직면한 과제에 대해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조 공간이 풍부한 곳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같은 창조도시의 맥락에서 요코하마(?浜)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요코하마 창조도시의 성공 사례는 아카렌 창고처럼 오래된 지역의 자원을 잘 활용했으며, 개발의 이익보다는 시민 입장에서 도시의 변화를 추구할 뿐 아니라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공공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코하마는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의 서남부에 위치해 가나가와현청 소재지이자 가나가와현 최대 도시로 꼽힌다. 면적은 437.56km2에 인구 376만 6,999명(2023년 2월)에 세대수는 1,781.426세대로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쿄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도쿄 대도시권에 속하며, 서울과 인천의 관계처럼 도쿄의 외항 역할을 해 서울과 인천을 묶어 경인이라 하는 것처럼 도쿄와 요코하마를 묶어 게이힌(京浜)이라 하기도 한다.
인천과 요코하마는 지정학적이나 역사적 맥락에서 유사한 점을 여러 가지로 찾을 수 있다. 인천에 짜장면 박물관이 있다면 요코하마에는 라멘 박물관이 있고, 인천에 송도경제자유구역의 동북아트레이드타워가 있다면 요코하마에는 베이브리지타워가 있다. 그뿐 아니라 경인철도와 신칸센 등 요코하마를 소개할 때 ‘한국의 인천’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곤 한다.



야간 조명을 밝힌 요코하마 스카이라인


두 번의 재난을 겪은 요코하마
인구 600명의 시골 마을이던 요코하마가 세계 역사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한 미일수호통상조약이다. 이로 인해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으며, 일본 최초로 개항한 곳이 바로 요코하마다.
개항 이후 요코하마는 시가지와 외국인 거류지 정비, 차와 명주실 수출로 근대 무역도시로서의 체계를 정비해 가면서 도시화의 기초를 마련해 갔다. 그러나 1866년에 발생한 대화재는 요코하마 대부분을 불태웠고, 이를 계기로 요코하마 시가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게 된다. 당시 일본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라고 불리는 요코하마공원의 건설을 비롯해 하수도와 대로를 정비하고, 대로 주변에도 건축물이 들어서게 된다. 이것은 일본 근대도시 계획의 설계일 뿐 아니라 요코하마시 도시계획의 토대가 되었다. 요코하마는 1880년대부터 무역 교역량이 급속히 증가하자 기존 항만시설로는 부족해 1889년과 1899년 두 번에 걸쳐 축항 공사를 실시하고 동양 최대 규모의 항만시설을 갖추게 된다. 이때 공업용지 공급을 위해 처음으로 매립사업이 시작되어 게이힌 공업지대 조성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요코하마 산업 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런데 대규모 화재를 겪은 요코하마는 설상가상으로 또 한 번 재난을 맞는다.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항만시설이 처참하게 붕괴되었으며,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어 도시 기능마저 마비되었다. 그리고 관동대지진의 피해 복구가 지연되면서 고베항의 성장과 도쿄항만 개발 등으로 인해 국제무역항으로서 요코하마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1929년 무렵 도시 복구가 마무리되고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1931년 이후에는 게이힌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기존 무역과 함께 공업이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고, 요코하마는 국제무역항과 공업도시로서의 기초를 갖추게 된다.
요코하마는 1866년 대규모 화재와 1923년 관동대지진이라는 엄청난 재난을 딛고 무역항과 공업도시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다시 한번 위기를 맞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일어난 1945년 5월 29일 연합군의 요코하마 대공습으로 도시의 42%가 불타 버려 허허벌판이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항만시설의 90%, 도시의 27%가 연합군에 몰수되어 요코하마의 재건은 다른 도시에 비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요코하마의 붉은 벽돌 공원



요코하마항


아픔을 딛고 창조도시로 거듭나다
일본 정부는‘전후부흥원’을 설치,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도시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1950년 ‘항만법’ 개정으로 요코하마는 요코하마항 관리권을 시가 갖게 되면서 공업도시 요코하마에 항구를 활용한 물류 공업지대로서 산업 기반을 정비하게 된다.
요코하마는 전후 미군 주둔 등 도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1965년에 ‘요코하마 6대 사업’이 제안되었고, 그중 하나로 도심부 강화를 위해 미쓰비시 중공업, 요코하마 조선소와 일부 부두들이 있는 곳을 재정비해 요코하마의 도심부를 일체화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그 후 1983년 미쓰비시 중공업과 요코하마 조선소 이전이 완료되고 나서 ‘미나토미라이21사업’이 시작된다.
요코하마는 구시가지 간나이 지구와 요코하마 주변 지구로 나뉘는데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것이 요코하마시의 숙원사업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진행한 것이 바로 ‘미나토미라이21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두 지역이 연결되었고, 과거 건축물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 결과, 요코하마 바샤미차 역 1번 출구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 ‘YCC 요코하마 창조도시센터’로 연결된다.
이러한 인프라를 토대로 2000년대 들어서 요코하마를 문화도시로 만든 프로젝트가 바로 ‘크리에이티브 시티 요코하마’다. 2000년에 도시계획이 책정되었는데 활력 있는 도시계획, 안전·안심할 수 있는 도시계획, 개성이 넘치는 도시계획, 삶을 지탱하는 도시계획이 원칙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행정과 시민,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요코하마는 여러 차례 도시의 재난을 새로운 발전의 발판으로 만들어 온 역사가 있었다. 따라서 2009년 요코하마는 개항 150주년을 맞아 ‘크리에이티브 시티 요코하마’ 사업을 활발히 전개했다. 여러 기업과 단체, 지자체가 상호 연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2010년부터 공간(space), 사람(people), 교류(relation), 거리(community)라는 네 가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역사와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일 기회를 만들고, 요코하마의 다면적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교류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거리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골자다.
창조도시로의 발전 과정에서 요코하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힘든 시기마다 도시계획을 하되, 미래를 보고 설계하는 관점이다. 그리고 문화예술 진흥 같은 ‘소프트’한 시책과 지역개발 같은 ‘하드’한 시책을 함께 진행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민이 자랑할 만한 도시,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도시로의 발전을 같이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자발적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시민 활동과 협력에 관한 기본 방침을 조례로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조도시 인천을 꿈꾸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요코하마의 사례를 통해 인천이 더욱 발전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창조도시 인천의 밝은 내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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