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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짠물’로 ‘단물’ 만드는 인천

2019-12-05 2019년 12월호



‘짠물’

‘단물’ 만드는 인천

 
글·그림 김학균



‘시 속에 그림,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중국 문인 소식(蘇軾)의 말을 좇아 시 쓰며 그림 그리고, 근·현대 인천史와 인문학 강의하며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인천에 살고 있는 것은 인천이 나를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70여 년 동안 인천에서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은 인천이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70년 전 젖 떼자마자 인천으로 온 나는 인천에서 결혼하고 아이들을 길렀고 인천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았다. 신포동, 수봉회관, 주안역, 양키시장, 배다리 이런 단어들은 내 삶의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인천 사랑을 위한 알맹이를 말하기 위해 군(軍) 시절을 회상해 본다. 월남 파병 때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 부대에는 ‘심 상병’이란 인천 후배가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만난 고향 후배는 형제보다 반갑고 친근한 존재였다. 야간 초소 경계 근무를 서던 어느 날, 고향 인천의 후배가 ‘인천 짠물’이라며 푸대접을 받았던 일을 이야기했다. 심 상병은 “사람들이 왜 인천 사람들을 ‘짠물’이라고 비하하느냐”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는 다 짠물인데 유독 인천 사람들만 두고 짠물이라고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난감했다. 심 상병은 파병 전부터 ‘인천 짠물’이라며 푸대접을 받은 기억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나 역시 왜 인천 짠물인지 잘 모르고 있던 터였다. 한참 고민하다가 불쑥 비류와 온조 설화가 떠올랐다.
기원전 18년 미추홀 인천의 시조인 비류가 “미추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히 살 수 없다”고 했다는 기록이 역사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면서 ‘짠물’이라는 말은 곧 인천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말일 뿐 구두쇠처럼 씀씀이가 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짜다는 의미는 부패를 방지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지금 돌아보면 인천 짠물의 의미는 생활력이 강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인천은 요충지여서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았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항당하며 피해 의식이 많았다. 이런 치열한 현장에서 지혜롭게 살지 않으면 바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짜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빈틈없는 사람들이 바로 인천인이며 이것이 인천인의 정체성이고 인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이 아닌가 한다.
1980년대 인천항이 번창하면서 ‘인천 드림’을 실현할 요량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천으로 모여들었다. 부평, 주안 공단 조성과 함께 “인천에 가면 굶지 않고 산다”는 말이 유행했다. 여럿이 다 모여 잘사는 인구 300만의 인천은 포용의 도시, 해불양수(海不讓水)의 성어 속에서 전국 8도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어우러져 살아왔고 이제 새터민과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며 세계적, 다국적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인천은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포용의 도시다. 인천에 살면 모두가 인천 사람이고, 인천에 살지 않아도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받은 사랑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여생을 인천 사랑에 쏟으며 살아가리라.
 
 
 
 
생선의 맛, 먹는 즐거움 魚味喰樂


小見 문학산의 한 마을



多島樂仁川 섬이 많아서 즐거운 인천



長春仁川 장미! 긴 봄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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