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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내가 사랑하는 인천-시인 신현수

2020-04-01 2020년 4월호


시인 신현수


부평 미군부대 앞 ‘신촌’에 살고지고


글 신현수 시인

시인의 시집 <천국의 하루>


요즘 뜻하지 않게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운동할 시간이 나지 않아 차를 타기 전 부평공원을 한 바퀴 걷고 있다. 공원 끝을 따라 걸으면 5,000걸음 정도 된다.
나는 신촌 출신이다. 서울 신촌이 아니고 인천 부평 신촌이다. 신촌은 기지촌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신촌 뒤쪽으로 썰매 타고 고기 잡던 개울이 흘렀다. 개울 너머 군인들이 주둔하던 부대가 있었다. 나중에 ‘숟갈 공장’으로 바뀌었다. 그게 지금 부평공원이 되었다. 그곳이 일제강점기, 무기를 만들던 조병창 자리라는 것은 나중에 커서야 알았다. 극단 아토의 이화정 대표가 조병창을 소재로 뮤지컬 ‘언노운UNKNOWN’을 만들기도 했다. 신촌은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삼릉)로 일하러 온 노동자들 때문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미국이 주둔하면서 소위 기지촌이 됐다. 어쨌든 그래서 ‘신촌’이다. 신촌에서 굴포천을 건너면 산이 하나 있다. 우리는 그 산을 ‘앞산’이라고 불렀다. 식물 채집도 하고, 동생을 잃어버리기도 했던 산이 앞산이다.
얼마 전 약속이 있어 어린 시절 살던 신촌을 걸었다. 그때 다니던 신촌성결교회도 그대로다. 여기는 수근약국 자리였고 여기는 장 의원 자리, 여기는 연안상회 자리, 여기는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집 자리. ‘백운 쌍굴’을 걸어서 지나갔다. ‘백운’이란 명칭은 1980년대 중반 백운역이 만들어지면서 새롭게 생겨난 것이고, ‘쌍굴’이란 이름도 당연히 없었다. 그곳은 사실은 굴이 아니라 굴포천 위를 지나가는 철길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 복개했지만 여기서 여름에는 헤엄치고 놀았고, 겨울에는 썰매 타고 놀았다. 복날이 다가오면 동네 어른들이 개의 목에 끈을 묶어 철길에 매달았다. 무슨 ‘고려 시대’ 얘기하는 거 같지만 불과 몇 십 년 전 일이다. 50여 년 전 일인데 기억이 선명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왜 이토록 힘이 셀까?
우연히 인터넷에서 부평 신촌성결교회 창립 10주년 기념사진(1966. 6. 5)과 부평 신촌성결교회 1969년 성탄절 주보를 발견했다. 이런 게 아직 남아 있다니 놀랍다. 이만신 목사님, 안광성 당시 전도사님, 전복순 전도사님…. 이 어른들의 이름을 보니 그분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분들의 말투와 목소리까지도. 초등학교 시절, 크리스마스이브에 동방 박사 세 사람이 나오는 연극을 했던 일, 나보다 더 큰 기타를 메고 ‘장막을 거둬라 너의 좁은 눈으로’ ‘빠빠빠빠 사랑의 진실’을 노래했던 일, 고등학교 누나들이 내 노래에 환호했던 일, 공연이 끝난 후 함께 노래한 교회 형의 오버 자락 속에 들어가 새벽길을 걸어 집집마다 새벽송을 돌았던 일, 교회에서 돌아온 새벽 그토록 갖고 싶었던 세이버 스케이트가 방안에 놓여 있었던 일, 교회 지하 베다니실에 모여 찬송가를 불렀던 일, ‘갈꽃의 속삭임’ 문화제에 전시할 시화를 만들기 위해 산에서 주워 온 낙엽 위에 그림 그렸던 일, 그리고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던 일….
나는 인천 사람이고 부평 사람이다. 나는 참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다. 한곳에서 무려 60년 이상 살고 있다. 지금이 농경 사회도 아닌데…. 물론 대학과 직장생활 때문에 떠나서 산 적이 있지만 어머니가 계속 살고 계셨으므로 떠난 게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의 ‘고향’은 ㅎ아파트다. 제금난 큰아이가 근처에 살고 아기도 낳아 키우고 있으니 아버님부터 따지면 무려 4대가 부평에 깃들어 살아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부평공원을 걸었다. 아버지가 평생 부평역까지 걸어서 출근하시던 일이 떠오른다. 나도 내일부터 부평역까지 걸어서 출근해 봐야지 생각하다가, 아니 그때는 백운역이 없었으니까 부평역까지 걸어가셨겠지, 하는 생각에 미치자 괜한 헛웃음이 나온다. 


신현수 ​: 시인으로, 평생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하다 지난 2월 명예퇴직해 현재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오래도록 인천 시민단체를 이끌어왔다.



부평서초등학교 1학년 때 남동구 간석동 약산에서.(사진 맨 오른쪽)



신현수 선생이 한 살 때부터 살던 부평 신촌의 생가.



부평 신촌성결교회 1969년 성탄절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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