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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천 사람-배우 박상원

2020-05-03 2020년 5월호

인천 안에서 크게, 세상을 품다

배우 박상원

오늘 배우 박상원의 일상은 서울, 더 넓은 세상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가 친선 대사로 구호 활동을 하는 세계 여러 나라도,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시도의 작업실도, 인천과 맞닿아 있다. 처음엔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다시 이끌려 왔다. 그에게 인천은 ‘운명’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그의 고향은 대구, 집안이 가장 어려울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인천행 야간열차에 올랐다. 부모님의 마음은 차창 밖 세상처럼 암담했지만, 소년은 여행을 떠나듯 설레었다. 물론 떠밀리다시피 살게 된 낯선 도시의 삶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야구가 있어 행복했다. 서울로 이사한 후에도 그는 2년을 더 인천에 머물며 긴 통학 길을 감당해 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학창 시절의 추억과 함께 정든 도시, 인천을 떠나야 했다.

오늘, 공연 무대부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드는 대배우이자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수 박상원의 집은 서울이다. 그의 삶은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한 도시에 머무르기엔 그의 시선이 닿는 세상이 넓고, 세상을 향한 애정은 깊다. 그 시작점은 운명처럼, 다시 인천이다.
인천에는 그가 ‘사랑하는 세계’로 향하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다. 그에게 공항 너머 세상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몸과 마음을 쏟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 친선대사로서 20년 넘게 품어낸 삶의 한 부분이다. 옹진군 시도에는 그림을 그리고 사진 작업도 하며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작업실이 있다. 이 모든 것들과 운명처럼 연결된 인천은, 그에게 일상만큼 중요한 의미다.

“처음엔 스스로 인천을 선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 인천은 나의 현재와 미래의 공간이 됐지요. 운명적이에요.” 소년 시절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미지의 세계, 인천에서 시작된 새로운 인연. 그 만남과 함께 그가 품은 세상도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오래된 ‘View 카메라’ 앞에서.
그의 예술적 영역은 연기를 넘어
사진, 미술 분야를 아우른다.



캔버스 안에 그려진 박상원.


아프리카의 남자. 그는 20년째 ‘월드비전’ 친선 대사로 활동 중이다.


인천에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보냈지요.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집 형편이 가장 어려울 때였지만, 저는 굉장히 밝은 학생이었어요. 고1 때까지 작은 편이었는데, 늘 큰 애들 틈에 끼어 다녔지요. 그냥 어울려 다니는 게 좋았던 건데, 눈에 좀 띄었던가 봐요. 그때 노는 학생들이 모이는 밴드부에서 저를 굉장히 욕심냈어요. 도망 다니느라 애 좀 먹었지요.

동산고등학교를 나왔지요. 그 주변에 추억이 많겠어요. 
학교 주변부터 전동, 신포동, 자유공원.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야구장이에요. 동산고등학교가 야구 명문이잖아요. 고2 때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전학 가지 않고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 무렵 개통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까지 통학했지요. 정든 친구들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야구 명문인 동산고등학교에 대한 애착도 있었어요. 수업을 빼먹고 야구장에 갈 정도였으니까요. 언젠가는 우리 학교가 인천고등학교에 계속 지는 거예요. 박차고 일어나 응원을 주도하다 이를 계기로 졸업할 때까지 야구 응원단장을 했어요.

야구를 좋아하는 걸로 유명해요. 연예인 야구단도 하지 않았나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연예인 야구팀을 제가 처음으로 만들었을 거예요. ‘굿프렌즈’ ‘재미삼아’ ‘조마조마’ 다 제가 만든 연예인 야구팀이에요. 지금까지도 야구는 제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동산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맡았지요?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네요. 
우리학교가 80여 년 깊은 역사가 있는데, 13대 총동문회장이 됐어요. 가문의 영광이지요. 사실 서울예술대학 총동문회장도 몇 년째 하고 있어 자신은 없었어요. 그런데 역대 총동문회장을 하셨던 선배님들이 오셔서 권하니 차마 거절할 수 없고, 또 아무나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생각해 기쁜 마음으로 맡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인천에 가는 일이 잦아졌어요.

지난해 10월에 옹진군 홍보대사로 위촉됐는데요. 
네. 옹진군 시도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은 공간이 있어요. 사진 작업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연극 연습실로도 쓰는 작업실이에요. 그곳에 자주 오가다 보니 옹진군에서 홍보대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고,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송도 바닷가에서.



시도에 작업실을 마련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언젠가 옹진군에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가는 길에 옥외 광고판을 제작하면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어요. 이런 카피를 제안했지요. ‘광화문에서 가장 가까운 섬’. 실제로 서울에서 40~50분이면 인천 섬에 갈 수 있어요. 제가 시도에 작업실을 마련한 가장 큰 이유예요. 가고 싶은 마음이 커도, 거리가 멀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적극적으로 옹진군을 알리고 있습니다. 홍보대사로서 하고 싶거나 계획 중인 일이 있나요?
인천 섬들을 쭉 돌아보며 사진에 담고 싶어요. 땅에서 찍고, 하늘과 바닷속에서도 찍고요. 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담지 않고 은유적으로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작업을 선호해요. 특별한 시선으로 인천 섬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습니다. 사진 작업이 아니더라도 섬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에요. 한 25년 전쯤 백령도에 갔었는데,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세계 어디 내놔도 손꼽히는 경관이라고 자부해요.

사진작가로서 그동안 보여준 작품들을 보면, 섬 사진 작업에 기대가 큽니다. 섬 외에 인천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얼마 전 어릴 적 살던 시내를 쭉 돌아봤는데, 느낌이 묘하더라고요. 4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개발에서 소외된 원도심의 경제적 불이익을 생각하면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장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구잡이식 개발의 시대를 지나 도시 재생에 대한 의식이 성숙한 시기라, 과거가 현재, 미래와 어우러져 함께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인천국제공항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천은 전 세계와 가장 가까운 도시, 대한민국의 관문이잖아요. 어느 나라든 더 편하고 빠르게 나갈 수 있다는 건 도시의 큰 매력이에요.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해외에 자주 나가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최근 탄자니아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후원하면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다일비전센터’가 완공을 앞두고 있거든요. 마을 사람들에게 의료, 교육, 음식 나눔의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그동안 아프리카만 20여 차례 다녀왔고, 그 밖에도 거의 모든 대륙을 다녔습니다. 대부분 긴급구호가 필요한 지역들이에요. 20년 넘게 월드비전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데, 아프리카에 다녀올 때마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집니다.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을 목격하니까요. 당장 우리 삶과의 격차를 좁힐 수는 없어도, 죽음을 마주한 삶에서는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재능이 있고, 무엇보다 그 모든 일을 진심으로 해내는 열정과 에너지가 대단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겠지요? 
저는 늘 비슷해요. 연기하고 학교 나가면서, 주어지는 일을 성실히 해내는 거지요. 동산중고등학교와 서울예술대학 총동문회장이라는 무거운 책임도 착실히 지고, 옹진군 홍보대사의 역할도 진정성 있게 해야지요. 전 세계에서 구호와 나눔 활동에 참여하면서, 틈틈이 사진 작업도 할 거고요. 언젠가 좀 한가해지면 시도 작업실에 더 오래 머무르면서 내 안의 것들을 풀어내고 싶습니다.



한 도시에 머무르기엔
그의 시선이 닿는 세상이 넓고,
세상을 향한 애정은 깊다.
그 시작점은 운명처럼, 다시 인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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