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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내가 사랑하는 인천-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 지휘자

2020-10-05 2020년 10월호


인천 바보
글 리여석


한국기타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


​인천의 연습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은 인천을 불편한 도시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편안하다. 인천은 내가 출생한 곳이 아니다. 나는 지금의 부천시(부천군 소사읍)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다. 상당한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그 재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고 나는 유산이란 것을 받지도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고 아주 궁색하게 자라지는 않았다. 여섯 살 때 부친이 별세하시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는데 어머니께서는 무척 생활력이 강하시고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이를 극복하는 능력이 있으셨다.
아마도 지금의 나는 어머니의 이런 유전 인자를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생활력 유전 인자는 제외하고 말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천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인천 송림동으로 이사를 했고 1년 뒤 화평동에 정착한 이래 인천이 좋아 지금까지 살고 있다. 수십 년을 살면서 인천에서 살기 싫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천에 대한 섭섭함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동국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다음 시흥 안산중학교를 거쳐 인천 부평여자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인천과 또 다른 인연이 시작된다.
당시 이준경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기타 합주반을 만들고 국어 교사지만 음악 교사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만 해도 기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때라 동료 교사와 학부모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음악 활동이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1년여의 혹독한 연습을 하면서 음악적인 완성도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학교에서 기타를 가르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건임) 당시 TBC, MBC, KBS 등 TV에 수차례 출연하면서 기타 합주의 교육적인 효과와 실적에 대한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3년간 당시 경기도 중등학교 음악경연대회(경기도 인천시 시절)에 출전해 연이어 1, 2위로 입상하고 우리나라 음악경연대회 사상 기타가 참가하는 최초의 기록을 세운다.
이때가 1971년으로 창단 연도가 된다. 이후 몇몇 학교에서 기타반과 합주 활동을 시도했으나 모두 결실을 맺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초창기 멤버들이 일반인이 되고 합주단도 학교 활동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연주 단체로 발전하면서 기타 오케스트라로 가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 합주용 기타를 들여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기타 오케스트라가 탄생하고 현재의 리여석 기타 오케스트라가 된다.
인천은 우리나라의 근대 문물이 시작된 곳으로 여러 분야에서 최초라는 기록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타 오케스트라 역시 인천에서 시작되고 우리나라 기타 음악사에 족적을 남겼다.
기타 오케스트라는 인천에만 있다. 그러나 인천에서의 연주 활동은 여러 면에서 쉽지만은 않았다. 하여 적극 지원과 후원을 해주겠다는 타 시도의 러브콜을 받고 단체를 옮길 마음도 있었으나 인천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수십 년간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고 곳곳에 깃들인 추억들이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용기를 내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다른 곳으로 갔더라면 아마 지금보다는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인천 바보가 되었다.
많은 문화인들이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나는 인천의 공기와 땅을 버릴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인천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는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인천이 고향이 되고, 토박이보다 인천에 더 애착을 갖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인천이 좋다.


1980년대, 중구 경동의 한 카페에서 아내 조예진과 2중주



부평여중 재직 시 제자들과 계양산으로 소풍 가서 찰칵



리여석(본명 이은철)은 부천에서 태어났으나 인천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가족 모두가 인천으로 이사, ‘인천 사람’이 되어 지금까지 인천을 지키며 살고 있다. 본래 중학교 국어 교사였으나 교내에 기타 합주반을 만든 것을 계기로 1971년 우리나라 최초로 기타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52차례의 정기연주회를 가지며 기타 음악과 우리나라 음악 발전에 굵은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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