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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천무형문화재와 차 한잔- 능화스님 ‘범패와 작법무’ 보유자

2023-05-01 2023년 5월호


부처님의 자비, 처염상정의 예술로 승화하다

                                                                       (處染常淨: 흙탕물에서 연꽃이 피어남)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안영우 포토 저널리스트



‘나는 누구인가’ 바람이 전나무 잎새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오대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계곡을 타고 세차게 흘러갔다. 월정사 전나무 길을 걷던 청년이 걸음을 멈추었다.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귀공자풍의 젊은이였다. 청년이 두 손을 모으며 머리
를 숙였다. 뜨거운 물줄기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딸그랑….” 대웅보전 풍경 소리에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봄 햇살이, 어루만지듯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1980년 약관의 청년 김종형(능화스님, 64)은 그렇게 강원도 월정사에서 ‘출가득도出家得度’를 한다.
“대학 조교로 일하며 기술고시를 준비했는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리를 한 겁니다.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고 나중엔 마음마저 황폐해졌어요. 요양하기 위해 서울의 ‘자비정사’란 절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무염스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지요.”
혈기방장한 나이, 풍운의 꿈을 접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승려가 된 것이 부처님의 뜻임을 깨달은 건 머지않아서다. 병약했던 그의 심신이 기적처럼 치유된 것이다. ‘범패와 작법무(바라춤)’에 심취하기 시작한 때는 출가 뒤 3년쯤 지나서다.
“어느 날 봉원사에서 소리와 함께 바라를 들고 추는 춤을 보았는데 마음이 고요하고 행복해지는 겁니다.” 진리를 노래하고 부처님께 공양드리며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의식이자 불교예술. 범패와 작법무에 흠뻑 젖은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하며 대가로 성장해 나간다. 인천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한 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인천을 찾았을 때였다.
“1980년대 중반 인천에 와보니 여기저기 공장만 보이고 거리엔 화물차들이 달리고 있는 겁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문화예술이 필요한 도시란 확신이 들었어요.” ‘양류관세음보살님의 유지를 받들어 세상을 구원한다’는 의미의 ‘구양사救楊寺’는 그렇게 창건됐다.
창건 이후 월미도에서 ‘인천전장고혼천도재’를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능화스님은 매년 스러져간 영혼을 위한 범패와 작법무를 무대에 올렸다. 2002년 시작한 ‘현충재’는 특히 재일학도의용군, 특수임무유공자 등 매년 기리는 대상을 달리하며 혼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자리엔 어디라도 달려갔다. 국내는 물론 미국 카네기홀, 일본 국립극장 등 지금까지 그가 펼친 공연만 2,800여 회에 이른다. 오는 6월 6일 현충일엔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생전예수시왕생칠재’ 의식을 진행한다. 전생에서 진 빚을 살아 있을 때 미리 갚고 닦는 재의식이다.
하루 두세 시간만 눈을 붙이며 동국대학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정도로 그는 부지런하게 걸어왔다. 꾸준한 자기 계발은 동국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2025년 출가 45주년을 앞두고 능화스님은 1만 부처님의 명호를 일일이 손으로 쓰는 대작불사大作佛事를 진행했다.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불원통不遠統의 염원을 담았습니다.”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사경공덕寫經功德으로 완성해 구양사 ‘범패민속문화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이 작품은 펼치면 길이가 1km에 이르는 대작이다.
오는 5월 27일은 ‘부처님 오신 날’. 처염상정處染常淨으로 피어난 능화스님의 장삼자락 끝에서 부처님의 자비가 흘러내린다.


능화스님이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1만 부처님을 일일이 손으로 쓴 대작불사 옆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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