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시정

인천의 아침- 인천시민의 날에 보는 ‘올 웨이즈 인천 all_ways_INCHEON’

2021-10-05 2021년 10월호


인천시민의 날에 보는

‘올 웨이즈 인천 all_ways_INCHEON’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


‘모세의 기적’처럼 푸른 바다 한가운데를 가르는 길 위로 래퍼 비와이BewhY가 경쾌하게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바다는 길로 변한다. 이어 조용했던 개항로를 발랄한 거리로 부활시킨 이창길 대표가 등장하고, 여성 최초 최우수기관사(탑콘)의 영예를 안은 인천교통공사 배윤경 기관사는 힘차게 열차를 출발시킨다. CD 마술사 한설희는 마법으로 바다를 도시로 피워내고, 청각 장애 철인3종경기 선수 오상미는 거친 대지와 바다를 질주한다. 우리 인천시가 인천시민의 날(10월 15일)을 앞두고 제작한 TV 광고에서, 인천 청년 5인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인천 도시 브랜드 광고에 등장한 청년 5인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다, 하늘, 땅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all_ways_INCHEON)’이다.
인천은 고대로부터 문물과 문명이 나아가고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이자 플랫폼이었다. 인천이 세계로 향한 길을 처음 열어젖힌 시기는 삼국 시대인 4세기쯤이다. 당시 고구려에 의해 중국으로 가는 길이 막힌 백제는 바닷길을 개척한다. 근초고왕(재위 346~375)부터 개로왕(재위 455~475)에 이르는 한 세기 동안, 백제는 능허대凌虛臺(연수구 옥련동) 한나루에서 사신을 보내고 외국 사신을 영접했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도 인천은 중국과의 해양 교류를 위해 거쳐야 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엔 수도의 관문이자 한반도 경제와 물류의 중추 역할을 담당한 도시가 인천이었다. 여기엔 한강과 예성강이 만나 황해로 나아가는 요충지인 지리적 여건도 한몫했다.
개항(1883)과 함께 인천은 우리나라 중심도시의 위상을 재확인하며 근대사를 견인한다. 제물포(인천항)를 통해 외국의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천에선 우리나라의 문명과 외국의 그것이 충돌하고 융합하며 새로운 문명을 빚어낸다. 그 과정에서 인천해관(세관), 서구식 공원, 호텔, 천일염전, 이민, 짜장면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우리나라 최초’가 인천에서 탄생하기도 했다.  
인천이 본격적으로 하늘길을 열어젖힌 때는 2001년 인천국제공항을 개항하면서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인천국제공항은 최고의 서비스를 인정받으며 세계적 글로벌 허브 공항으로 날아올랐다. 인천국제공항은 인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시키며, 도시 브랜드를 탄탄히 받쳐주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북한이 협력해 머잖아 인천-해주-개성을 잇는 남북 경제 벨트를 구축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철도로 연결되는 육지의 길도 활짝 열릴 것이다.
‘올 웨이즈 인천’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역학 구조를 바탕으로 탄생한 인천의 정체성을 잘 말해주는 도시 브랜드이다. 조선 초기까지 ‘인주仁州’란 지명을 쓰다가 1413년 10월 15일 ‘인천군仁川郡’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인천’ 브랜드는 지금, 바다와 하늘과 땅 길이 활짝 열린 한반도의 중심도시란 이미지로 시민들의 마음에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홍보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4
  • 최종업데이트 2024-01-10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