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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있는 세상, 모든 것은 섬이 된다

2015-06-02 2015년 6월호



무의도 하나개 해벽(海壁)

떨어져 있는 세상, 모든 것은 섬이 된다


낯선 땅이란 없다. 낯선 등반가만 있을 뿐. 이때 알았다. 아침 해로 눈뜨는 바다,
해무의 숲이 걷히고 청명한 파도소리가 맑게 떠오르던 순간 마주했던
그 벽의 의미를…. 땅이 그리운 인천으로 향했다. 무의도를 돌아설 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떨어져 있으면 섬이 된다는 걸. 배 안으로 해조음이 밀려들었다.
절벽을 뜯어먹는 파도소리가 귀에 선하다.
글 임성묵  사진 주민욱 월간 ‘사람과 산’



그 섬 무의도, 바다 가운데 땅
‘포도밭에 앉았던 꿩/ 인기척에 푸르르 날아간 뒤/ 소나무가 한가하다/ 바윗돌도 소나무를 닮아간다// 썰물이면/ 징검징검 실미도로 건너가는 연인들의/ 호기심이 가까이 다가와도/ 실미도의 과거는 드러나지 않는다(하략).’
평생을 바다와 섬을 기행하며 사람의 고독과 섬의 고독을 잇는 시를 써온 이생진 시인의 ‘실미도, 꿩 우는 소리’의 일부다. 차분한 어조로 침통한 듯 내뱉은 그의 독백이 끝내 절절하다. ‘실미도의 과거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핵심 대목은 한국 현대사의 숨겨진 아픔을 기리는 레퀴엠인가. 어두운 과거를 보듬어 진실을 말하라는 속 깊은 언사인가.
1971년 8월 23일, 정부는 한국에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국군과 교전을 벌이던 가운데 서울 노량진에서 자폭했다고 발표했다. 실미도 사건이다. 실은 북파 공작원이었던 이들의 진실이 세상을 관통한 건 1999년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를 2004년 강우석 감독이 동명 영화로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다. 이를 기회로 실미도로 터진 뭍의 관심은 천만 관객이라는 영화 흥행 만큼이었다. 그러나 태양이 강하면 그늘도 짙어진다고 했던가. 이슈를 따라가는 발길의 아이러니인즉슨 실미도의 본도(本島)에 해당하는 한 섬의 존재감조차도 무력해진 데 있었다. 부지불식간 이슈를 향해 터진 관심의 그늘인가.
그 섬 무의도(舞衣島). 바다 가운데 땅으로 가는 기행은 현재의 심정에 있지 않았다. 지난 시절의 아련함에 서단(緖端)을 두었다. 그것은 2009년 뭍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무엇이 더는 없어 보였던 이 섬에서 전과 다른 국면이 연출되면서부터였다. 로프를 맨 클라이머들의 출현은 해벽 등반이라는 이색 시현의 전조였다. 그 중심에 선 이는 암벽등반지 발굴과 개척에 관해서라면 고산자로 칭해야 옳을 등반가 윤길수(57) 씨였다.





곧추선 해안 절벽 아래 바다

뭍을 뜬 배가 돌아서자마자 큰무리 선착장이다. 옆 차는 그래서 시동을 끄지 않았나? 내 나라 안 대부분의 섬이 그렇듯, 으레 해안가 풍경 속엔 진경이 하나쯤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리로 간다. 곧추선 해안 절벽 사이의 등로를 따라 오르자 이국으로 열린 바다는 구름에 잠겼다. 후드득! 비다. 끝없이 바다와 조우하며 살아가는 도인(島人)들의 삶이 해무에 잠긴다. 아직 뭍의 시간을 다 덜어내지 못해서인가. 조급한 마음이 좀체 비워지지 않는다. 지는 노을을 등반의 하이라이트로 본다면 그리 서두를 일도 아니었나. 앞섰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시장기가 동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제 빛깔로 일어선 호룡곡산 등산로 입구의 객잔에 들었다. 잘 볶아진 낙지의 매운맛에 한 줄 땀이 흐를 때쯤 열린 하늘이 푸르다. 개펄의 진흙물이 풀어져 흙빛으로 출렁였던 먼 바다는 덩달아 하늘빛을 닮는다.
바다가 물러간 자리에 드러난 개흙을 따라 이어진 접근로가 짧다. 만조였다면 먼 산길을 에돌아야 한다. 넓은 개펄이라 하나개라고 했던가. 고저를 크게 두지 않는 지세이고 보면 해식애를 수직단애로 가다듬기 위해 들고난 밀물과 썰물의 시간이 억겁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
하나개 암장은 선경 속에 자리했다. 어찌 된 일인지 바위보다 바다에 발을 들이고 싶은 주객이 전도된 마음이 동한 걸 보면 성하의 계절은 해원(海原)을 향해 열렸다. 물 나간 자리에 드러난 펄을 바라보니 맨발로 어느 섬 갯가의 진흙 벌판을 누볐던 유년기의 추억이 진저리 쳐질 정도로 피어나면서 파도 소리 위에 꿈처럼 떠올랐다. 하나개 암장의 등반지는 총 여섯 지역으로 뚜렷한 해안선의 굴곡을 따라 이어졌다. 모래사장에 대충 따라서 그리니 비슷하다. 이럴 정도로 이곳 지세의 들고남은 확연했다.



바다로 유지한 세상과의 간격
오후를 지나면서 서해 물빛이 더할 나위 없이 눈을 시리게 하자 하늘과 바다의 이분법적 구도는 더욱 선명해졌다. 잠시 한 마리 물고기가 된 나는 본질적으로 수성(水性)이며 여성인 바다로 상상 여행을 떠났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별과 바다를 그리워하고 갈구하는 건 거기서 시원했기 때문이라고. 등반가의 견지에서 바라본 해벽 등반에 대한 클라이머의 갈망은 전혀 성질을 달리하는 뭍과 바다의 경계점을 오른다는 이색에 있는 것일까.
“학암포가 처음이었네요, 해벽 등반지 개척에 나선 것이. 등반가에게는 누구나 새롭고 어렵게 오르고 싶다는 심성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나요. 6년 전 우연한 기회에 호룡곡산 산행을 하면서 해안 절벽을 유심히 살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해벽 등반이 특별난 건 산과 대비되는 바다를 곁에 두어서일 겁니다. 일종의 일탈을 통한 해방감을 해벽 등반에서 얻는 거지요.”
윤길수씨의 말대로 오전부터 피어오른 해무가 끝없이 생성하며 앞바다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그가 해가빛 벽을 향해 출발했다. 그의 등반은 정혜를 깨친 스님처럼 어떠한 요동도 없이 차분했다. 오를수록 멀리 바라본다는 진언이 현실의 세계로 발을 들인다. 높이를 더할수록 수직과 수평의 심상은 더욱 뚜렷해졌지만 그는 숨을 고르며 벽만 올랐다. 햇빛은 울울창창했고 바다는 말 그대로 쪽빛이다. 발밑으로는 절망 같은 수직의 고도감이 파도 소리처럼 밀려들고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엔 고깃배가 한 편의 서정시처럼 다가섰다. 바다로 나간 갈매기들이 드는 물 따라서 지근거리에 도착할 즈음 등반이 만미(滿尾)를 맞았다. 땀을 들인 만큼 짜릿한 등반이었나. 구릿빛 얼굴에 퍼지는 미소를 보니 그렇다. 그간 수많은 암장을 발굴 개척하며 한국 자유등반사와 함께 달려온 이 베테랑 등반가의 정신은 언제나 청년인 듯했다. 와락 뛰어들고 싶은 짙푸른 여름 바다의 유혹 끝에 서 있는 우리는 늙지 않을 것 같았다.
정신 차리라는 듯 순간 들이친 파도에 놀란 발이 차다. 순식간에 물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차오를줄은 몰랐다. 오후가 되자 해를 맞이한 바다가 연붉다. 이내 온 세상이 시뻘건 색으로 도배되겠지. 떠나야 할 시간, 문득 세상과 간격을 바다로 유지하는 것 또한 삶을 영위하는 좋은 방편이라고 여겨졌다. 물이 차올라 등산로를 따랐다. 뭍이 그리운 사람들은 인천으로, 섬이 그리운 사람들은 무의도로 교차하는 선착장은 왁자했다. 낯선 땅이란 없다. 낯선 등반가만 있을 뿐. 이때 알았다. 아침 해로 눈뜨는 바다, 해무의 숲이 걷히고 청명한 파도 소리가 맑게 떠오르던 순간 마주했던 그 벽의 의미를…. 땅이 그리운 인천으로 향했다. 무의도를 돌아설 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떨어져 있으면 섬이 된다는 걸. 배 안으로 해조음이 밀려들었다. 절벽을 뜯어먹는 파도 소리가 귀에 선하다.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춤추는 섬, 무의도
무의도는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18km, 용유도에서 남쪽으로 1.5km에 있는 섬이다. 섬의 형태가 장군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 같아 무의도(舞衣島)라고 하였다. 최고점은 해발고도 245.6m의 호룡곡산이다. ‘서해의 알프스’라는 그 산의 ‘환상의 길’을 따라 내려가면 아찔한 절벽에 다다른다. 파도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고 눈앞에선 ‘환상’이 펼쳐진다. 무의도에서는 하나개와 실미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특히 실미 해수욕장은 썰물 때 바닷길이 열려 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하나개 해수욕장에서는 호룡곡산, 국사봉이 가까워 등산과 해수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찾아가기 _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따라 북인천, 영종대교, 공항신도시를 지나 신불IC에서 잠진도 쪽으로 진입, 제방도로를 따라 3km 달리면 잠진도 선착장이 나온다. 선착장에서 무의도행 배를 타면 섬까지 4분 남짓 걸린다. 문의 무의도해운 751-3354~6, muuido.co.kr
무의도에 도착하면 해안도로를 따라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간다. 호룡곡산 등산로를 따라 10분 정도 운행한 후 바다 쪽으로 난 급경사 20여m를 내려서면 제1암장이다. 물이 빠졌을 때는 해수욕장 왼쪽 갯벌을 따라 5분 정도 운행하면 암장에 도착한다.    
잘 데와 먹을 데 _ 무의도에는 민박과 음식점이 많다. 또 하나개 해수욕장과 실미 해수욕장에는 야영장이 있다. 샤워시설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야영하기에 편리하다.

※ 월간 ‘사람과 산’은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산악전문지입니다. 1989년 ‘휴머니즘과 알피니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역사를 시작한 이래,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의 등산 문화를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02-2082-8833, www.mountai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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