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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古山子의 지도 들고, 섬 산에 오르고 싶어라

2015-08-04 2015년 8월호


고산자古山子의 지도 들고, 섬 산에 오르고 싶어라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피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고산자(古山子)의 후예가 오늘 이 시대에 지도를 만들고 있다. 지도 제작 전문가이자 산악인인 김홍국(65) 선생은 남동구 간석동에서 지도 제작업체 ‘고산자의 후예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29세손이다.
2006년 남편 고(故) 이재곤 선생과 함께 한반도의 산줄기를 샅샅이 훑어 완성한 ‘백두대간 24’는 대한민국 지도사에 한 획을 그었다. 아내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진부령까지 한반도 산맥의 속살을 뚫고 남편은 790킬로미터에 이르는 산길을 지도 24장으로 그려, 부부가 함께 지도를 완성했다. 김 선생은 자기 몸에 흐르는 피보다, 먼저 간 남편을 더 자랑스러워했다. 함께 해서 영광이었고 지금도 그립노라고, 그는 말한다.
“대단한 분이셨어요. 1965년부터 지도를 그리셨지요. 당시 우리나라 도법 기술은 일본 책을 트레이싱페이퍼에 그대로 베끼는 수준이었어요. 당신께서는 그때부터 펜을 잡아 새 도법이 나올 때마다 바로바로 제 것으로 만드셨지요. 그 시간만큼 명성도 쌓여 갔어요.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은 것은 물론 일본에서 그이의 기술력을 배워갔으니까요.”
처음 등산지도를 제작한 것은 1980년 오대산과 설악산의 지도를 만들면서부터다. 지도 제작을 의뢰한 업체에 등산지도는 이미 있지 않으냐고 했더니, 전부 엉터리여서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부부는 백두대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등산지도 제작에 뛰어들었다. 1982년 당시 유일한 등산지도였던 ‘코오롱스포츠’ 시리즈를 만들고, 1984년부터 지금까지 <월간 산>의 부록지도를 전담해 제작하고 있다.
‘직접 다녀온 산만 그린다.’ 철저한 현장 답사를 거쳐 지도를 만드는 건, 고산자 후예들의 철칙이었다. 그네들이 나침반과 고도계를 들고 산을 올라 피와 땀으로 만든 지도는, 놀랍도록 완벽했다. 산행 루트의 높낮이와 구간 거리, 이정표 등 산악인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가 정확하고 상세하게 기록됐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도는 ‘생명’과도 같다. 하지만 산을 타는 사람들조차 그 가치를 잘 모른다고 했다.
“지도를 팔아서 돈이 됐냐고요? 그럴 리가요. 아무리 좋은 지도를 만들어도 팔기는 힘들어요. 산악회 회원 한 명이 지도를 사서 모두에게 복사해서 돌려버리니까. 또 언제든 인터넷에서 지도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대이니, 사람들이 돈을 주고 지도를 사는 데 인색해요.”
부부가 평생 지도를 그려 손에 남은 건, 20평대 아파트 한 채와 구로에 있는 30평대 공장 한 채가 전부였다. 그마저 돌아가신 부군께서 술 한잔 드시고는 제자들에게 기분 좋게 넘겨버리셨다. 맡아하던 지자체와 업체의 일도 함께 다 줘버렸다. 아내에게는 왜 그리 욕심이 많으냐며, 아이도 다 키워놓았으니 우리는 우리대로 먹고살면 된다고 했다. 그러고선 아내를 홀로 두고 먼저 떠나버렸다. 하지만 아내는 원망하지 않고, 지금도 남편의 뜻을 묵묵히 따르고 있다.
김 선생은 최근 옹진군 북도면 등산로와 둘레길을 담은 지도를 펴냈다. 두 달여가 걸렸다. 섬을 샅샅이 둘러보고, 밤새 지도를 그리고 또 그렸다. 미심쩍다 싶으면 바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돈이 안 되고 몸은 후들거렸지만, 힘든 줄 몰랐다. 오히려 즐거웠다. 다른 섬에도 욕심이 났다.
“인천은 축복받은 도시예요. 육지 가까이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있으니까요. 인천 시민으로서 인천의 섬을 지도로 완벽하게 그려보고 싶어요. 인천의 섬, 섬 안의 산을 정말 사랑해서 하는 말이에요.” 갑자기 인천 섬, 그 섬이 품은 높고 푸른 산을 오르고 싶어진다. 든든한 안내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줄 그의 지도를 손에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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