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관광

쉼표

2024-01-12 2024년 1월호

스며들다

겨울과 겨울 사이,   섬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겨울 바다로 가다 




세상은 고요하다. 겨울과 겨울 사이, 장봉도. 넘실거리던 바다는 질펀한 갯벌을 드러낸 채 저 멀리 물러나 있었다. 아득히 보이는 수평선 사이로 도시의 소음이 가라앉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다를 끌어안았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썰물 따라 밀려 나갔다. 바다는 겨울에서야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


겨울 바닷가로 가는 건, 나를 만나기 위해서다. 차디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버려야 하지만 쌓아만 두던 마음의 짐을 벗어낸다. 춥다. 두 볼이 얼얼하다. 저 아름다운 바다 깊숙이 숨겨두었던 눈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가 바람이 되고 파도가 되고 하늘이 된다.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겨울 바다에 살다


하늘에서 본 장봉도


작은 멀곳


내 나이 팔십, 육이오 때 피난 와, 삶을 꾸린 이곳 장봉도. 그때부터 굴을 쪼아서 삶을 시작했다. 가족의 삶을 쪼았다. 또닥 또닥 또또닥. ‘아엠아프’ 때도 쪼았다. 또닥 또닥 또또닥. 아이들에 시집 장가도 쪼았다. 또닥 또닥 또또닥. 이젠 손자 손녀의 학비도 쫀다. 또닥 또닥 또또닥. 저승 갈 때 쓸 나에 노자도 쫀다’ 

- 장봉도 마을 벽화에 새겨진 주민 조숙자 씨의 시 


섬사람들에게 겨울 바다는 생존의 장이다. 어머니는 석화石花 밭에서 차디찬 바람 맞고 갯벌에 뒤엉켜 삶의 희망을 캤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가운데서도 쪼새를 두드리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아버지는 바다로 나가 모진 물살을 견디며 지주를 세우고 발을 던지고 김을 맸다. 갯벌이 메워지고 섬에 거대한 활주로가 나도, 섬사람들은 바다 곁을 떠난 적 없다. 

이 겨울이 끝날 즈음, 섬 선착장엔 물기 어린 김을 가득 실은 배가 드나들고 향긋한 바다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섬을 비추는 햇살은 그저 평화롭다. 순간 ‘우우웅’ 비행기가 섬의 하늘을 훑고 지나간다.


장봉도 인어상

첨부파일
이전글
이전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홍보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4
  • 최종업데이트 2024-01-10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