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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공원

인천 근대사의 지표

담당부서
()
작성일
2018-06-19
조회수
669

○ 인천 근대사의 지표

월미도는 면적 0.7㎦의 작은 섬으로 해발 108m의 월미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긴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

반달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월미란 이름이 붙여졌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월미도는 백제 이후 해상교역이 활발하던 고려에 이르기까지 자연도(영종도)와 함께 중요한

교통로였고 조선 시대에는 한양수도를 지키는 군사기지 였으며 월미행궁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개항기에는 강화도를 거쳐 한강을 통해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관계로 외국의 선박들이 조선으로 들어오기 위해

머무는 첫 기착지로써 강화도, 영종도와 함께 수난이 많았던 섬이었다.
월미도가 인천과 육지로 연결된 것은 1906년이다. 1918년 북성지구에서 월미도에 이르는 왕복 2차선 제방둑길이 축조되고, 이후 각종 관광 시설이 들어서면서 경인지역 최대 관광지로 발달하였다.
해방후에는 미군의 '해양경비대' 기지가 되어 한국인에 대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6.25전쟁 중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이 되어 미국 구축함의 첫 포탄이 월미도에 작렬하면서 관광지로 개발되었던

아름다운 풍광은 초토화되어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한국전쟁 후 군부대의 주둔으로 2001년 개방되기까지 약50년 동안 군사기지 역할을 하였다.

인천 근대사의 지표 _1

인천 근대사의 지표 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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