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사
- 도시와 사람의 시간, 인천의 마음을 읽다
IncheON -겨울, 영흥도
기다림의 섬
바다가 차오르면 다시
섬은 기다린다.
물이 빠지면 배들은 갯벌에 몸을 기대고, 물이 차오르면 다시 떠오른다.
밤이 온다.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누군가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물결은 아직 밀려오지 않았다. 지금은 기다릴 시간이다.
바다가 차오르면, 다시.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에이이미지 스튜디오

멈춘 시간
바람이 분다.
바다 물결이 일렁이고 멀리 영흥대교가 아득하게 걸려 있다.
진두 포구, 배 몇 척이 같은 방향으로 몸을 낮추고 있다.
밧줄은 말뚝에 느슨하게 감겨 있고, 갑판 위로는 아무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방파제 모퉁이에 놓인 장화 한 켤레.
밑창에 펄이 말라붙어 있다.
뒤축이 먼저 닳아 있다.
이른 아침 바다에 나갔다 돌아온 사람의 흔적이 말없이 남았다.
햇살이 수면 위로 부서진다.
반짝, 반짝. 눈이 부시다.
다리 너머로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가지만 포구의 시간은 멈춰 있다.

배 이름이 햇살 아래 드러난다. 에바다호.
벗겨진 페인트 사이로 녹이 번지고,
글자는 오래된 숨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다.
배 밑바닥엔 살갗이 벗겨진 자국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다. 녹슨 볼트, 밧줄에 배인 소금기,
갑판 틈에 눌어붙은 펄이 시간의 무게로 내려앉았다.
누군가는 이 배를 타고 오랜 세월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이른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바다로 나아가 그물을 던지고 다시 돌아오는 삶. 손길이 머문 자리마다, 시간이 먼저 닳아있다.


물때
해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빛이 수평선 너머로 길게 몸을 뉘인다.
파도가 방파제에 몸을 부딪힌다. 철썩.
물거품이 튀어 오르고 물방울이 햇살에 반짝인다.
짠내 어린 바람이 뺨을 스친다.
방파제 난간에 손을 얹는다.
차가운 쇠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바다는 여전히 넘실거리지만,
말뚝에 묶인 밧줄은 조금씩 힘을 받는다.
이 자리에 오래 머물러 온 배들은,
물때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리는 쉼 없이 이어지지만 배들은 물결 위에 가만히 머문다. 해가 천천히 기울어 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섬의 시간이, 그대로 흘러간다.

섬의 밤
노을이 번진다.
바다 물결이 주홍빛으로 물들다 세상이 온통 붉은 빛에 잠긴다. 배들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물 빠지는 방향을 따라, 갯벌의 경사를 따라,
서두르지 않고 몸을 맡긴다.
앞으로 여섯 시간.
물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이 자리에 그대로 머물 것이다.
기다림은 그렇게
물때를 따라 되풀이된다.
영흥대교에 불빛이 켜진다. 하나, 둘, 셋.
그 빛이 물 위를 건너고 다리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저 멀리 누군가 다리를 바라보고 서 있다.
그 자리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다.
이윽고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멀어지는 발소리.
남겨진 것은 방향을 조금씩 바꾸며 숨을 고르는 물결뿐이다.
영흥도의 밤은 깊다.
물때를 따라 숨 쉬고, 고요를 견디며, 다시 아침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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