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사
- 도시와 사람의 시간, 인천의 마음을 읽다
IncheON | 김연용 사진가
길은 다시 열린다
멀리 돌아왔기에 비로소 보인 것들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고,
물이 차오르면 바다는 그 길을 말없이 거둔다.
선재도仙才島.
새벽 안개가 갯벌을 천천히 지워갔다.
그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줄을 더듬으며 걷고 있었다.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아버지였다.
집에서 어장까지 이어진 낡은 나일론 줄 하나.
아버지는 그 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바다를 건넜다.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 아낙들은 앞다투어 뭍으로 빠져나갔다.
아버지는 노래를 부르며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개는 사람을 삼키고, 노랫소리만 갯벌 위에 남았다.
아들은 그 뒤를 따랐다.
사진기를 들고.
보지 못하는 사람을 따라 걸으며,
아들은 비로소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다.
눈이 아니라, 발끝으로. 바람으로. 소리로.
아버지가 건너던 갯벌 앞에는 지금 ‘뻘다방MUD BEACH’이 있다.
바다의 짠내와 갓 내린 커피 향이 한자리에 머문다.
오늘도 누군가 닫혀 있던 문을 연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연용 사진가.

선재도 앞바다, 목섬.
썰물이면 길이 열리고, 밀물이면 길은 바다 아래 잠긴다.

선재도 바다에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린다.
아버지가 건너던 길이다.
멀리, 비로소
국민학교를 마치던 해,
소년은 처음으로 선재도를 떠났다.
도시의 친구들이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서해 바다 끝 작은 섬이라고 하자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바다냐, 뻘이지.”
그 말은 고향을 떠난 뒤 오래도록 따라다녔다.
갯벌 냄새가 밴 운동화와 바닷바람이 스민 옷깃이 부끄러웠다.
텔레비전 속 에메랄드빛 바다는 다른 세상처럼 빛났다.
섬에서 나고 자란 자신을 벗어나고 싶었다.
스무 살을 넘기며 그는 정말 섬을 떠났다.
언덕 위 새하얀 벽, 코발트빛 창과 바다.
그리스 미코노스Mykonos는 온통 빛이었다.
더 멀리 갔다.
중남미 온두라스 카리브해 연안의 가리푸나Garífuna까지.
그 마을 해변에서 사진기를 들었다.
모래를 박차고 솟아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렌즈에 담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웃으며 물었다.
“너 바보 같이 왜 땅에서 나오는 거야?”
모래가 발등에 후드득 떨어졌다.
“내가 사는 곳의 바다는 검은 갯벌이라,
여기처럼 색이 가득한 곳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어.”
아이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여긴 행복하지 않아.
나는 너희 같은 나라에서 학교를 다녀보는 게 꿈이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버리고 온 풍경이, 한 아이에겐 꿈이었다.
멀리 갈수록, 돌아갈 곳은 더 선명해졌다.
검은 갯벌. 물때를 따라 열리고 닫히는 그 길.
발끝으로 기억하던 바다.
선재도仙才島 였다.

중남미 온두라스 가리푸나Garífuna 마을.
멀리 갈수록, 돌아갈 곳은 더 선명해졌다.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던 시절,
선재도에서
온몸으로, 보다
군에 있을 때였다.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가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했다.
쇠를 두드리고 나무를 다듬던 사람이었다.
핸들을 잡고 세상을 누비던 사람이었다.
평생 몸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린 사람이,
하루아침에 빛을 잃었다.
아들은 선재도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집에만 머물지 않았다.
눈을 잃고도 새벽이면 바다로 향했다.
집에서 어장까지 이어진 나일론 줄 하나.
아버지는 쇠갈고리로 그 줄을 더듬으며 매일 갯벌을 건넜다.
“우리는 이 줄을 생명줄이라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발끝으로 갯벌 골의 결을 읽었다.
밤새 바람이 얼마나 불었는지,
물길이 어디로 났는지 가늠했다.
이마를 스치는 햇살을 따라 바다로 향하고,
노을을 등에 지고 돌아와야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
아버지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나일론 줄과 쇠갈고리 하나.
그것이 아버지의 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다가 순식간에 갯벌을 삼키기 시작했다.
생명줄이 끊어졌다.
해가 기울도록, 갯벌 너머로 어둠만 밀려왔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문이 열린 건 한참 뒤였다.
아버지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붙잡고 걸어왔다고 했다.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그날 이후 아들은 바다를 향해 커다란 스피커를 틀어놓았다.
“나는 눈으로 보지만,
아버지는 온몸으로 세상을 읽고 계셨습니다.”

눈먼 어부의 귀환.
아버지는 노을을 등에 지고 돌아와야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선재도
26년 전, 선재도에 다리가 놓였다.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선재도는 기다림의 섬이었습니다.
배를 기다리고, 물길을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던 섬이었습니다.”
어릴 적 맨발로 뛰어다니던 갯벌 앞에
여행자들이 앉아 노을을 바라봤다.
같은 갯벌이었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왔다.
돌아와 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갯벌의 골은 평생 허리를 숙여 조개를 캐 온 어머니의 주름 같았다.
새벽마다 어장으로 나가시던 아버지의 발자국 같기도 했다.
예전엔 외면했던 풍경이었다.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이곳이었다.
아버지가 평생 쓰시던 대장간 연장들로 공간을 가꾸었다.
뻘다방MUD BEACH.
쇠를 두드리던 자리에 커피 향이 피어오르고,
바닷가에 낯선 사람들이 나란히 앉았다.
얼마 전이었다.
한 청년과 그 부모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지갑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2002년, 신혼여행으로 선재도를 찾았을 때 그가 찍어준 것이었다.
사진의 모서리는 닳았지만, 웃음만은 그날 그대로였다.
“그저 사진 한 장을 찍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 사진이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을 건너온 삶의 기록이었습니다.”
선재도 앞바다에는 목섬이 있다.
썰물이면 길이 열리고, 밀물이면 바다 아래 다시 잠긴다.
흔적도 없이.
“영원히 열려 있는 길도, 닫혀 있는 길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순간이 더 소중합니다.”
오늘도 선재도 앞바다에 물이 빠진다. 길이 열린다.
아버지가 건너던 길이다.

어머니의 삶이 갯벌에 새겨져 있었다.
예전엔 외면했던 풍경이었다.

길은 다시 열린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선재도 바닷가.
김연용
사진가·뻘다방MUD BEACH 대표
1976년 선재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중 아버지가 시력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눈먼 아버지와 함께 갯벌을 걸으며 삶과 바다를 기록한 포토에세이 『아버지의 바다』를 출간했고, 서울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EBS 「세계테마기행」 ‘민다나오’, ‘온두라스’ 편에 출연했으며, 2026년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시상식 지역사회 상생 부문 사회공헌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선재도에서 뻘다방MUD BEACH을 운영하며 사진, 커피, 전시를 통해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호는 자우(慈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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