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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와 사람의 시간, 인천의 마음을 읽다

인천광역시 민선 9기 출범 특집 | 박찬대 시장이 걸어온 길

2026-07-09 2026년 7월호

인천에서 인천으로,

이제 세계로 


용현동 1967, 인천 2026 

판자촌 소년, 인천의 심장을 깨우다

박찬대 시장이 걸어온 길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369일.

그는 집으로 가지 못했다. 나라가 흔들리는 동안 그가 지켜야 할 자리는 여의도였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갔다. 가을도 지났다. 그래도 인천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밤, 그는 국회 담장을 넘었다. 발이 피범벅이 된 줄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용현동 판자촌 골목. 짠내 어린 갯바람과 처마 밑 흙냄새가 뒤섞인 자리에서 한 소년이 자랐다. 어머니는 날마다 바지락을 까고, 아버지는 작은 구멍가게 하나로 일곱 식구의 생계를 건사했다. 가난은 번번이 앞을 막아섰다. 그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곳도 인천이었다.

2026년 4월 22일, 인천시민들 앞에 선 그의 첫마디는 짧지만 묵직했다. “인천이 키운 박찬대, 집에 왔습니다.”

귀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인천을 세계의 심장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안고, 그는 인천 앞에 섰다. 봄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 그는 온몸으로 배웠다. 오래전 그 골목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 긴 시간 속에서.


 

용현동 판자촌 시절, 가족과 함께. 

소년의 눈빛엔 이미 인천이 담겨 있었다.



인천이 키운 사람

용현동 판자촌. 가난한 노동자와 피난민이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던 동네는 오래전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박찬대 시장의 삶에서 한 번도 지워진 적 없다. 

비가 오면 골목은 흙탕물로 질퍽거렸고, 바닷바람이 판잣집 틈새를 파고들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바지락을 까고 명태를 다듬었다. 아버지는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일곱 식구를 건사했다. 가난하지만 인심은 넉넉했던 지역사회가 그를 함께 키웠다. 동네 절은 배곯지 않게 했고, 교회는 배움에 고프지 않게 했다. 짜장면을 처음 먹은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다. 미술대회에서 선생님이 사 준 설렁탕 한 그릇이 그토록 뜨겁게 느껴졌던 것은,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미술을 좋아했다. 그림을 더 그리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그 꿈을 가로막았다. 용현초등학교에서 대건중학교, 동인천고등학교로 — 그는 인천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자리에 인하대학교 캠퍼스가 들어섰다. 소년은 그 학교에서 4년 전액 장학생이 됐다. 사라진 마을은 다른 길이 되어 그를 다시 품었다.


인천을 품은 소년, 

인천상륙작전 기념비 앞에서. 

이 도시가 그의 전부였다.



사람을 향하다

2009년 5월이었다. 수많은 사람 사이로 노란 풍선이 흔들렸다. 흐느낌이 물결처럼 번지고, 누군가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운구차 앞에 멈춰 손을 얹고 한참을 서 있었다. 훗날 그는 그날을, 평범한 공인회계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날로 기억했다. 그날 이후 그의 발걸음은 인천의 시민사회단체를 향했다. 먼저 문을 두드리고 먼저 말을 건넸다. “회계사인데 도움이 될 일이 없겠습니까.” 그의 아내는 “목사가 될 줄 알았지, 정치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2012년 첫 도전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공천조차 얻지 못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시장 어귀에서 인사를 건네고, 골목마다 발걸음을 옮기며 귀를 기울였다. 판자촌 골목에서의 삶이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었다. 막힌 길 앞에서도 끝내 멈추지 않는 것.

2016년 총선. 인천 연수구갑. 밤새 개표가 이어졌다. 숫자는 앞섰다가 뒤집히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개표함이 열리고 확인된 최종 차이는 214표, 0.29%였다. 단 214표. 첫 당선이자 인천 시민이 건넨 첫 번째 신뢰였다. 그 믿음을 안고 세 번, 국회에 입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인천이 대한민국의 심장이 되어야 한다.

세계 3대 강국, G3 코리아로 도약하는 핵심 거점.

천의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300만 시민과 함께, 인천이 새로운 역사를 쓴다.


2025년 6월,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인천이 키운 사람,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다.



인천의 봄

인천 내항 부두에 그가 서 있다. 저 멀리 컨테이너 크레인이 움직이고, 수평선 위로 배 한 척이 묵묵히 바다를 가르고 있다. 바다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인천을 이렇게 말해 왔다. 수도권이기에 규제는 받지만 정작 수도권 프리미엄은 없는, 이중 소외의 함정에 빠진 도시라고. 그러나 그의 시선은 늘 그 너머를 향했다. 인천이 대한민국의 심장이 되어야 한다. 세계로 나가는 출항지로 — AI와 바이오, 문화와 에너지, 하늘길과 바닷길이 하나의 힘으로 이어지는 도시. 원도심과 신도심이 함께 성장하는 도시. G3 코리아의 핵심 거점. 인천이 더 높이 도약할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인천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 그가 인천 앞에 선다. 인천광역시 민선 9기 출범, 300만 시민과 함께, 인천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인천의 미래는 이제 세계다.

바람이 분다. 인천항을 지나, 수평선 너머로. 세계로 나아가는 배의 깃발을 흔들며. 봄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인천 내항 1·8부두. 산업화 시대의 심장이었던 

이곳에서 그는 인천의 내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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