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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행복 메시지 | 칼럼
박물관을 만든 사람들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달동네박물관’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999년이었습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문을 열기 훨씬 전입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2005년에 개관했으니, 정확히는 개관 6년 전에 ‘달동네박물관’이라는 개념을 접한 셈입니다.
당시 수도국산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철거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주민들은 터전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 무렵 수도국산을 제집 드나들듯 하던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넝마주이처럼 일일이 빈집을 찾아다니며 집주인들이 버리고 간 물품을 수집했습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그의 동료들도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그들이 수도국산에 집중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혹시 나중에 달동네박물관이 생길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자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수도국산의 주소가 새겨진 문패, 수도국산 일대 지번이 적힌 보안등 표시판, 붓글씨로 운치를 낸 문짝 등 갖가지 생활용품이 구청 캐비넷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술대전에서 입상까지 한 작품이 제 주인을 찾는 일도 있었습니다. 수도국산에 살았던 한 화가가 가옥철거를 앞두고 이삿짐을 꾸리다 그림 몇 장을 벽장에 남겨둔 사실을 잊은 채 이사를 했습니다. 수도국산을 화폭에 담은 그의 작품은 콘크리트와 흙더미에 묻혀버리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물품수집과정에서 그림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림을 찾아낸 공무원은 화가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중구 인현동에서 화실을 운영하는 그의 소재를 파악, 그림을 돌려주었습니다.
일부 뜻있는 주민들도 동참했습니다. 수도국산 인근에서 솜틀집을 운영하던 한 주민은 자신의 손때묻은 솜틀기를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실 수도국산 철거 현장을 취재하던 당시, ‘달동네를 박물관으로 남긴다’는 발상은 낯설기만 했습니다. 물건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애쓰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누가 이런 폐품을 보겠느냐’는 냉소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자료 정리 수준을 넘어 논문까지 작성할 정도로 달동네박물관에 공을 들였습니다.
결국 그 집요함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위에서 기획해 일사불란하게 추진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밑에서 싹튼 문제의식과 현장에서 시작된 실천이 씨앗이 된 공간입니다. 이른바 톱다운(Top-Down)이 아닌 보텀업(Bottom-Up)의 사례라 할 만합니다.
최근 재개관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을 둘러보면서 27년 전의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건져 올린 것은 낡은 살림살이나 폐품이 아니라 한 시대의 체온이 밴 살아있는 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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