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새겨진 기억의 선
사라진 선로 위를 걷다, 사진가 류재형
철길이 끊어진 곳에서, 기억은 다시 선로를 놓는다.
황해도 피난민이었던 아버지는 서울역에서 평생 레일을 닦았다.
아들은 마흔이 넘어 인천의 옛 철길을 찾아 나섰다.
주인선, 북해안선, 부평 군용철도….
궤도는 뜯겨 나가고 공장은 멈추고 흔적은 지워졌다.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아들은 걷는다.
아버지가 닦던 그 레일 위를.
공원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솟아도, 침목은 땅속에 남아 있다.
그 위를, 한 사람이 오늘도 걷고 있다.
철길은 끊어져도, 기억은 끝내 이어진다.
사진. 류재형 작가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2012년, 주인선 남부역.
비 온 뒤, 선로 위로 도시가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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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주인공원
레일은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 나무가 자랐다.
레일을 닦던 손
황해도 장단군 고랑포리.
아버지는 고향에서 농사꾼이었다. 1950년 6월, 전쟁이 터졌다.
남으로, 남으로, 서울역에 닿았을 때, 손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1960년대 초, 철도청 서울역 선로반.
아버지는 레일을 닦는 사람이 되었다.
서울역 서부 관사 방 한 칸에 식구가 모여 살았다.
소년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잠들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밤기차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철도청 자녀에게는 무료 통학권이 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소년은 매일 기차를 탔다. 지겹도록. 싫도록.
그 시절, 선로는 집이고, 아버지였고, 삶이었다.
“마흔을 넘어 철이 들면서, 철길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류재형은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원도심 골목으로 들어섰다.
외지인이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집요했다.
“뭘 찍느냐”고, 답을 얻을 때까지 물었다.
“아버지가 닦던 철길을 찍고 있습니다.”
골목이, 그제야 열렸다.

2013년, 주인선 남부역
함박눈이 쌓인 레일. 기적은 멈췄어도 발걸음은 이어진다.
입영열차의 기적소리
주인선. 주안역에서 남인천역까지 약 4킬로미터.
1959년부터 삼십여 년간,
미군 군수물자와 입영열차를 실어 날랐다.
2000년대 초, 레일은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 주인공원이 들어섰다.
“보이지 않는 선로를 더듬으며 주인공원을 헤맸습니다.”
숭의동 207-6번지, 좁다란 골목에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한 노인이 다가와 물었다.
“여기서 뭘 찍으시우?”
“옛날에 여기로 철길이 지나갔잖아요.”
“아, 그 철길. 나 그거 타고 군대 갔었어.
입영열차. 저 앞에서 기차 타고 논산으로 갔지.”
노인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깊게 패인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말 대신 얕은 숨이 흘러나왔다.
그 시선이 닿은 허공에서 오래전 기적이 낮게 울렸다.
류재형은 셔터를 눌렀다.
보이지 않는 그날을 향해. 지워졌으나,
끝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붙잡듯.

2013년, 주인선
눈 내린 철길 위, 작은 그림자 하나.
바다와 공장 굴뚝 사이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 송현동.
공장 굴뚝 사이로 철길이 지나갔다.
인천역에서 인천제철까지 이어진 북해안선.
새벽 첫 기적 소리와 함께
철광석을 실은 화물차가 달렸다.
이 동네 아이들에게 기찻길 옆 골목길은 놀이터였다.
레일에 귀를 대면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땅을 타고 전해졌다.
‘기차가 온다.’
2004년 12월, 마지막 기적이 울렸다.
공장은 문을 닫고 궤도는 뜯겨 나갔다.
사람들은 떠나갔다.
류재형이 그 자리에 섰다.
아파트 사이 풀숲에 녹슨 레일 조각이 묻혀 있었다.
사진기를 삼각대에 올렸다.
렌즈 너머로 보이지 않는 선로가 이어졌다.
시커먼 공장 지붕들과 굴뚝 대신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찰칵’ 셔터를 눌렀다.

2013년, 주인선 남인천역 수인곡물시장 부근
기찻길 옆 골목, 영양탕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2013년, 주인선 수인사거리 부근
Ⓢ1958. 반세기를 버텨낸 시간이 새겨져 있다.
사라진다는 건
백이십여 년 전, 월미도.
인천역에서 바다를 건너던 군용철교.
러일전쟁을 위해 놓인 길이었다.
1911년 무렵, 선로는 거두어졌다.
바람만 남았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 부평.
캠프마켓 미군 부대 안으로 군용열차가 달렸다.
기적 소리가 울리던 곳. 2011년, 마지막 열차가 지나갔다.
철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다.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역사는 지워지면 안 됩니다.”
최근 인천역 앞 개항광장 주변의 폐선부지가 열렸다.
시민들이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다.
나무가 흔들린다. 그 아래 침목이 잠들어 있다.
류재형은 사진기를 든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초점을 맞춘다.
아버지가 닦던 레일.
입영열차가 서던 플랫폼.
공장으로 향하던 화물열차.
부평 한복판을 달리던 군용열차.
모두 사라졌다.
사진 속 기적이 울리고, 기억 속 철길이 이어진다.
오늘도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선로 위에 선다.

북해안선이 지나가던 동구 일대.
공장 굴뚝 사이로 새 아파트가 솟아오른다. 중앙의 만석비치타운
아파트가 옛 조선목재, 그 뒤가 괭이부리마을과 동일방직자리다.
류재형 작가
1954년생. 사진가. 인천가톨릭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 사진영상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태양사진연구소 소장이다. 2000년대부터 인천의 사라져가는 철길을 기록해왔다. 주인선, 수인선, 북해안선, 부평 군용철도 등 20여 년간 인천의 철도 유산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인천의 철길 시리즈Ⅰ 주인선-기억을 깁다 3.8㎞』 출간. 아버지는 철도청 서울역 선로반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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