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새, 생명의 노래가 되다.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사진. 시 환경안전과·공보담당관

새끼를 돌보고 있는 어미 저어새
남동유수지에서 무슨 일이
2009년 4월 22일 남동유수지. 이날, 이곳에서 생태학적으로 길이 남을 역사가 시작됐다. 유수지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던 작은 인공섬,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철새 무리가 시민단체 활동가 눈에 띈 것이다. 저어새였다. 남동유수지에서 그 전까지 쉽사리 볼 수 없었던 새다.
시민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오죽 갈 곳이 없었으면 유수지 인공섬에 둥지를 틀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하더라도 남동유수지의 수질은 좋지 않았다. 1988년 남동국가산업단지의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이래 공장지대를 거친 빗물이 유입되면서 수질이 악화된 상태였다.
인공섬 또한 조경 및 수위 측정용으로 설치된 시설물이었다. 그런데 저어새 무리는 인공섬을 보금자리 삼아 귀한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저어새가 생태계의 상식을 벗어난 날갯짓을 한 지 17년이 지났다. 남동유수지는 이제 세계 최대 규모의 저어새 번식지로 자리매김했다. 삭막한 잿빛 유수지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남동유수지 저어새섬
절망의 끝에서
피어난
16배의 울림
주걱 모양의 독특한 검정 부리를 가진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1호)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조류다. 저어새는 대부분 인천 갯벌에서 태어나 대만, 중국, 홍콩, 일본 등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면 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반복한다. 인천이 삶의 터전이자 고향인 셈이다.
이처럼 인천과의 인연이 각별하지만 1995년만 해도 지구상에 남아 있는 저어새는 430마리에 불과했다.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이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 단계인 ‘위급’(CR)으로 분류할 만큼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2025년 현재 저어새 개체 수는 7,081마리로 30년 만에 16배 증가했다. 인천에는 전 세계 저어새의 약 54%에 해당하는 3,828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남동유수지에서는 반전의 서사를 한층 더 실감할 수 있다. 최초 발견될 당시 54마리에 불과하던 것이 2025년 1,074마리로 20배 가까이 불어났다. 여기에 힘입어 ‘위급’으로 분류됐던 IUCN의 적색목록 등급도 2000년 ‘위기’(EN)를 거쳐, 2025년에는 ‘취약’(VU)으로 점차 개선됐다. 한꺼풀 두꺼풀 절망의 그늘을 벗어던진 것이다. 30년 전만 해도 갯벌 감소 등 생태계의 변화와 맞물려, 저어새는 절멸(EX) 수순을 밟아 먼 훗날 화석으로나 남았을지도 모를 철새였다.
저어새의 증가는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각국 정부,
연구 기관, NGO 및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번식지와
월동지를 보호한 결과입니다.
- 홍콩야생조류협회 유얏퉁(Yat-Tung Yu), '이동저어새 보전 국제포럼'(2026. 7. 15.)에서
도시와 시민,
철새를 입양하다
그렇기에 남동유수지에서 저어새가 처음 시민과 만난 2009년의 의미는 각별하다. 인천이 이동성 물새, 특히 저어새를 따스히 품어 안은 원년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시의 행정과 시민사회, 국제기구의 연대가 본격화했다. 곧바로 ‘인천저어새네트워크’가 꾸려지고 EAAFP(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 사무국도 송도국제도시에 둥지를 틀었다. EAAFP는 동아시아와 대양주를 오가는 이동성 물새와 그 서식지를 보전하기 위해 국가, 국제기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제협력 기구다. 저어새 보전을 위한 기반이 구축된 것이다.
시민들은 저어새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서식지를 지키는 생물다양성의 파수꾼이 되었고 시의 행정은 이를 적극 뒷받침했다.
이러한 보전 노력에 힘입어 남동유수지 내 저어새섬을 찾는 저어새가 늘어나자 시는 지난 2018년 유수지 내에 추가로 인공섬을 만들었다. 또 수질개선을 위해 준설 등 유수지 정비사업을 벌이는 한편 탐조대와 차폐림을 조성하는 등 저어새의 서·번식 환경 개선에 정성을 쏟았다. 이제 유수지 내 옛 인공섬은 ‘작은저어새섬’, 새 인공섬은 ‘큰저어새섬’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얻었다.
때로는 저어새섬에 위기가 닥치기도 했다. 너구리가 섬에 침입해 둥지를 훼손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 것이다. 2019년에는 230개 둥지 중 무려 225개 둥지가 번식에 실패했다. 하지만 너구리 역시 보호해야 할 소중한 생명인 만큼, 무작정 배척할 수만은 없었다. 시는 국립생태원과 머리를 맞대고 너구리를 안전하게 포획해 숲으로 돌려보내는 한편 섬 주변에 차단시설을 설치해 저어새의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지켜냈다. 아울러 저어새의 대표적인 월동지인 홍콩과 자매 서식지 협력체계를 구축, 공동 모니터링과 연구, 학생 교류, 국제 포럼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등 국제 협력을 강화해 왔다.
저어새는 상징종인 동시에 우산종으로서, 저어새를 보호하면
백로류, 오리류, 도요·물떼새와 이들이 이용하는 갯벌, 하천, 논 등
다양한 서식지와 생물종을 함께 보호할 수 있습니다.
- 인천광역시 저어새 생태학습관 권인기 관장, '저어새 보전 국제포럼'(2026. 7. 15.)에서
환영과 생일잔치,
그리고 배웅의 노래

저어새를 관찰하기 위해 남동유수지를 찾은 ‘저어새 보전 국제포럼’ 참가자들
현재 시는 저어새생태학습관을 중심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다채로운 생태교육과 모니터링,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교육과 홍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은 1만 6,000여 명. 가정에서의 반려견이나 반려묘처럼, 우리 시와 시민사회가 저어새를 얼마나 깊은 애정으로 보살펴 왔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저어새생태학습관의 사계절은 저어새와 함께 숨을 쉰다. 봄을 맞아 인천을 찾아오는 3월에는 ‘저어새 환영잔치’를, 5월에는 저어새섬에서 갓 태어난 아기 저어새의 생일을 축하하는 ‘저어새 생일잔치’를, 그리고 바람이 서늘해지는 10월에는 먼 월동지로 떠나는 저어새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저어새 환송잔치’를 연다. 갓 태어난 아기 저어새의 다리에는 조심스럽게 가락지를 채워준다. 저어새의 이동 경로, 생존율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 가락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징표로서의 의미도 품고 있다.

IUCN 생물다양성 보전 우수인증서

인천에서 열린 EAAFP 20주년 기념행사 모습
생물다양성 보전 정책 결실 맺어
•IUCN 생물다양성 우수인증
(세계 최초)
•람사르 협약 감사장
•EAAFP 공로패

저어새 생일 잔치

EAAFP 20주년 기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연대의 의미를 상징하는 LED 촛불을 밝히고 있다.
저어새는 이제 인천의 생태환경 정책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가 됐다. 남동유수지 또한 도시와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연 세계적인 생태 명소로 거듭났다. 인천시와 국제사회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이 서사는 지난 7월 14~15일 인천에서 열린 ‘EAAFP 20주년 기념행사 및 국제포럼’에서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시는 IUCN 그레텔 아길라르 사무총장 명의의 ‘생물다양성 보전 우수 인증서’를 수여받은 데 이어, 람사르협약 사무국의 감사장과 EAAFP의 공로패를 연달아 수상하며 세계가 인정하는 생태도시로서의 위상을 입증했다. 특히 IUCN 생물다양성 보전 우수인증은 세계 최초 사례다. 그간 시와 시민,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들의 노력과 결실이 국내외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시민의 삶 속에 스며든 저어새. 이 철새가 인천과 함께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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