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지킨 나라에서
오늘의 인천을 지키다
최장학 독립유공자 후손 최재황 경감
살다 보니 오게 됐고, 살다 보니 남게 됐다. 누군가에게 인천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지켜야 할 일상이 됐다. 그리고 그 일상 속 오늘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기억으로 만들어졌다.
나라를 지키는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졌지만, 국가를 위한 삶이라는 가치는 이어졌다.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마음은 세대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해지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라와 이웃을 지키는 힘이 되고 있다.
이번 「살아보니 인천입니다」는 광복절을 맞아 한 사람의 삶 속에 이어져 온 역사와 책임, 그리고 인천에서 쌓아온 시간을 담는다. 역사를 기억하고 오늘을 지키는 삶. 인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 윤은혜 본지 편집위원 사진. 이재형 포토디렉터


최재황 경감의 조부 최장학 선생
방식은 달라도 이어진 마음
인천 연수경찰서 최재황 경감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 자리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경찰의 길을 택했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방에 걸려 있던 할아버지 사진을 보며 버텼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최장학 선생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재학 당시 비밀결사 ‘흑조회’ 활동을 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항일 투쟁을 이어갔고, 해방 후 귀국해 육군통신학교 교장(대령)을 지낸 뒤 예편했다.
하지만,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최재황 경감의 어린 시절 기억 속 할아버지는 고문의 후유증과 힘겨운 삶의 영향으로 치매를 앓았고, 결국 실종돼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많지 않지만, 한평생 나라를 위해 사신 분입니다.”
그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깊이 체감한 순간은 1997년이었다. 보훈부에서 대학생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 등으로 초청했을 때, 타국에서 나라를 위해 싸웠던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직접 마주했다. 또 임시정부 내무부 차장이던 그의 외증조부(권준)의 발자취도 느낄 수 있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나라를 위해 싸우셨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할아버지처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경찰이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인천 연수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으로 근무하며
시민 안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위기의 순간, 시민을 구하는 경찰이 되다
20년 경찰 생활을 하며 많은 사건을 마주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올해 초 발생한 해외 노쇼 사기 사건이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고요하던 새벽, 지인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헬스 트레이너였던 지인이 ‘고액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베트남으로 갔다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일종인 노쇼 사기 조직에 속아 감금됐다는 것이다.
최 경감은 즉시 피해자들의 위치와 정보를 확인했다. 현지 조직의 감시가 있어 경찰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피해자 구출이 우선이기 때문에 탈출이 가능한 상황인지 확인부터 했습니다. 1층은 잠겨 있지만, 2층 베란다 문이 열려 있다고 들었고, 트레이너이기 때문에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건물 위치와 외관 사진, 계좌 정보 등 필요한 정보를 확보했고, 탈출하도록 안내했다. 이후 귀국을 위한 항공권 지원과 국제 공조 요청을 진행했다.
“신속한 검거를 위해 외교부 협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는데 당시 연수구 국회의원이셨던 현 인천시장님께서 직접 외교부에 협조 요청을 해주셨고, 신속하게 전원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 3명은 무사 귀국했고, 국제 공조를 통해 베트남 현지 조직원 8명을 검거했다. 해당 조직은 캄보디아 단속을 피해 베트남으로 거점을 옮긴 뒤 전국 631명을 대상으로 약 243억 원을 편취한 대규모 노쇼 사기 조직이었다.
“수사는 결국 사람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이 된 이후 늘 독립유공자였던
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립니다.
국민의 편에 서는 경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부 최장학 선생의 건국훈장 애국장
시민의 편에서
최 경감은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한 뒤에도 늘 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린다고 했다. 특히 독립운동 과정에서 겪었던 아픈 역사는 그에게 경찰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최장학 선생은 항일 비밀결사 활동 당시 악명 높은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옥사하거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제가 경찰이 됐지만, 부당한 세력의 불법적인 지시에 따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국민의 편에 서는 경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팀은 최근 필리핀을 거점으로 한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 사건 수사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검찰을 사칭해 피해자를 속이고 해외에서 범행을 이어가던 조직원들을 추적해 다수의 피의자를 특정하고, 일부를 검거했다. 해외 도피 조직원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한 상태다.
국내와 해외를 오가는 지능범죄를 수사하며 그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단순한 법질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 가족의 안전, 시민의 일상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세대가
그 의미를 깊이 새기며
이어가길 바랍니다.”

상해 임시정부 방문 당시, 최재황 경감의 외증조부인 권준 임시정부 내무부차장의 사진과 함께
삶의 터전, 인천
2007년 경찰에 입직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은 최재황 팀장에게 인천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시다.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매력이 있는 도시죠.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고요.” 초임지였던 인천중부경찰서에 근무하며 자주 찾았던 차이나타운과 월미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천의 공간이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의 역사가 담긴 월미도와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자녀들과 함께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는 자녀들에게도 독립운동의 의미를 자주 이야기한다. 조부와 배우자의 조부가 모두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어 성묘를 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가족의 역사와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라를 지켜주신 분들의 헌신을 광복절에만 기념하지 않고, 우리 일상 속에서도 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세대가 그 의미를 깊이 새기며 이어가길 바랍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시민을 지키는 경찰로 살아온 최재황 팀장.
그에게 인천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과거의 희생과 오늘의 책임이 이어지는 삶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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