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 인천의 얼굴들, 그들의 마음을 듣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선구 이사장 인터뷰···“누군가는 오늘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작성일
2026-04-20

멈추지 않는 한 끼, 도시를 움직이는 밥차

|이선구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사장 인터뷰


인천시 계양구의 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미소 가득 온화한 표정의 노신사였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그에게서 먼저 느껴진 것은 나이보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차분한 말투와 눈빛에는 시간이 쌓아온 깊이가 자연스럽게 묻어 있었다.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한 끼


도시 한복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공간 한켠에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멈추는 트럭이 있다. 붉은 색의 밥차. 그 앞에는 줄이 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밥이 건네진다. 인천 부평역, 주안역.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가 운영하는 ‘사랑의 빨간 밥차’가 서는 자리다. “배고픈 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이 ‘굶는 문제’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인천은 산업과 물류가 발달한 도시인 동시에, 그 이면에는 홀몸 어르신과 노숙인, 취약계층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 그리고 도움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 그 사이에서 밥차는 자리를 잡았다.



무너진 삶, 그리고 다시 이어진 기적


이선구 이사장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IMF 외환위기 속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한순간에 무너진 삶. 그 과정에서 그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보게 됐다.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한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경험은 그의 방향을 바꿨다.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나눔’이었다. 2007년, 여의도의 2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된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는 처음에는 작은 나눔에서 출발했다. 하나둘 손길이 모이면서 활동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고, 밥차 역시 조금씩 규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2년, 창고 화재로 큰 위기를 겪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잿더미 속에서도 ‘이 나눔을 어떻게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무료급식을 계속 이어나갔다. “보이지 않는 많은 분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어느새 밥차는 5대로 늘었고, 국내 143개 지부, 해외 80개 지부로 확장됐다.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된 일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을 이어주는 흐름이 됐다.



멈출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사람의 마음


그는 20여 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밥차를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급식소가 문을 닫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도 밥을 먹고, 저도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누가 식사를 드려야 합니까.” 그에게 밥차는 선택이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있었다. 눈이 내리던 시린 겨울, 인천 부평역.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던 한 할머니가 몸빼바지 안 깊숙한 곳에서 신문지에 똘똘 만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넸다. 때가 묻어 꼬질꼬질한 봉투 안에는 틀니가 들어 있었고 그 틀니에는 작은 금니 하나가 박혀 있었다. 기부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앞에 놓인 것은 작은 금니 하나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날의 장면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또 다른 어느 날, 어떤 어르신은 묵직한 비닐봉투를 건넸다. 찰랑찰랑. 그 안에는 1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밥차에서 밥을 먹고 그만큼 아낀 식비예요.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저같은 사람들 도우실 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모아온 그의 전부였다. “그 마음의 무게는 돈으로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밥차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 모이고, 다시 사람에게 돌아가는 자리였다.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나눔


밥차는 그의 삶뿐 아니라 가족의 삶도 바꾸었다. 오랫동안 함께 밥차를 운영해 온 아내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말기 판정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수술을 거부했고, 다시 밥차로 향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 소식은 밥차를 찾는 어르신들 사이에도 전해졌다.  한 달 뒤, 부평역. 배식을 위해 줄을 서 있던 어르신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빨간 장미꽃이 들려 있었다. 대부분 아흔을 넘긴 어르신들이었다. “우리 엄마 아프면 안 돼.” ‘엄마’라는 그 말 앞에서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몇 달 뒤, 병원 검사에서 암은 기적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다짐했다. 이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한 끼


이선구 이사장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는 택배기사입니다. 나눠야 할 것을 전달할 뿐입니다.” 그의 말처럼, 밥차는 누군가의 도움을 전달하는 통로다. 하지만 그 시간이 쌓이면서 도시는 조금씩 달라진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멀게 느껴졌던 문제가 내 곁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도시는 건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때로는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따뜻한 한 끼일지도 모른다. 이선구 이사장은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는 특별한 삶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주어진 자리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것. 그에게 나눔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오늘도 인천의 어느 곳에선 빨간 밥차의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 이선구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중앙회 이사장

◎ 목회자이자 사회복지 활동가로,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를 창립해 나눔과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2025년 대한노인회 고문으로 위촉되는 등 다양한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상, 서울특별시장 표창, 대한민국 독서경영대상, 자랑스런 문화인상 등을 수상하며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았다.


■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중앙회

◎ 인천시 계양구 황어로134번길 28(장기동 152-5)

◎ 1600-4022

◎ 노숙인·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급식과 생필품 지원을 펼치는 민간 나눔단체로, ‘사랑의 빨간 밥차’를 통해 전국 주요 거점에서 현장 중심의 나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자원봉사자와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연간 수십만 명에게 식사와 생필품을 지원하며, 지역사회 나눔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4122
  • 최종업데이트 2026-03-20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계정선택
인천시 로그인
0/250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