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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공원

어촌마을

담당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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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07
조회수
334
인천항이 개항되던 1883년 월미도에는 수십채의 초가로 이루어진 어촌 마을이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의 해군 석탄 저장고가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군사기지가 되면서 어촌마을은 일본에 의해 1904년에 강제로 철거가 되었다.
당시 월미도에는 21가구가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해산물이 풍부한 갯벌을 의지하고 때때로 풍어를 바라는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며 근해어업으로 생활을 하였다. 가옥은 초가로 부엌과 안방 대청으로 이어지는 일자형이거나 경기도 지방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기역자형의 가옥구조를 하였다. 한국의 가옥은 각 지방별로 그 지역 자연환경에 맞는 구조로 발달하였다.

위 사진은 1883년 개항초기의 제물포와 월미도로
제물포 포구는 개항 당시 인구 수천명에 불과한 한촌이었다. 이 사진은 개항 직후의 제물포 포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바닷가 주변에 듬성듬성 자리잡은 초가집과 어선들의 모습을 통해서 개항 이전의 제물포가 한적한 어촌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물포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이전까지 큰 기선이 제물포 내해로 용이하게 들어오기 위해선 월미도에 접안해야 했고 이를위해 외국 세력들은 월미도에 저턴시설을 마련하기도 하였다.어촌마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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