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월미공원

월미 포대

담당부서
()
작성일
2019-05-07
조회수
379
외국과 관련된 월미도의 약사를 간추려보면, 고종 16년(1879년)황해로 침입하는 외국함선에 대항하기 위해 월미도의 정상(105m)부근에
포대를 설치하였고, 고종 19년(1882년)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 일본공사관을 습격하자 화방공사 일행은 월미도를 탈출하여 영국 함선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도망쳤으며 1904년 일본은 월미도에 병기창고를 건설하였다.
포대는 은례, 엄폐가 가능하고 침입하는 외적을 기습 공격할 수 있는 지형적 특성을 갖춘 곳에 설치되었다. 인천에는 화도진과 연희진 관할지역에 포대가 설치되었고 강화지역에는 한강의 관문인 염하 일대 8개지역에 집중 배치하였다.
고종16년(1879년)어영대장 신정희에 의해 인천과 부평연안의 요새라 할수 있는 화도진과 연희진 그리고 각 진에서 관할하는 여려 곳에 포대가 축조되었다. 화도진은 괭이부리, 북성포, 제물포, 호구포에 설치된 포대를 관할하게 하였고 연희진은 연희동,원창동,가좌동 등지의 포대를 관할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은 논현동에만 그 포대가 남아 있을뿐 다른 곳에서는 흔적도 찾아볼 길이 없다.월미 포대_1

첨부파일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월미공원사업소
  • 문의처 032-440-5917
  • 최종업데이트 2024-04-16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