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다시 인천아리랑을 들으며
다시
인천아리랑을
들으며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김훈 작가는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을 때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댄스음악의 전성시대에서 대중음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산문집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올드팝이나 포크송에 익숙한 세대가 현대적 감수성, 특히 아이돌의 칼군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온전히 공유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필자 또한 TV 채널을 돌리다 아이돌 음악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패스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작정하고 한번 들어보려고 TV앞에 앉았던 적이 있습니다. 음악 감상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 난리일까’라는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BTS 컴백 콘서트입니다.
애써 귀를 활짝 열고 들어보니 젊은 세대의 음악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는 듯했습니다. 중장년층의 마음을 두드리는 요소가 분명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세대 간의 문화적 격차를 단숨에 좁히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아리랑이 울려 퍼질 때였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선율이 전 세계로 송출되는 장면은 그날 공연의 백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또 하나의 아리랑을 소환했습니다.
10여 년 전, 인천의 한 문화예술인을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의 손에는 오선보 한 장 들려있었습니다. 음표와 박자, 화음까지 완벽하게 표기된 곡의 제목은 ‘인천아리랑’이었습니다. 인천 아리랑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인천아리랑이 뒤늦게 세상에 나온 배경은 더욱 귀를 솔깃하게 했습니다.
그 시절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에는 청년 시절의 백범 김구 선생이 인천감옥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철도 공사에 강제 동원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천 제물포 살기 좋아도, 왜인 위세로 못 살겠네” 수감자들이 곡괭이질을 하며 지친 몸을 달래고자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바로 인천아리랑 입니다.
영화를 본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음원을 역추적한 결과,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 박사가 남긴 기록에서 인천아리랑의 원형을 찾아냈습니다. 이어 국악 앨범에 실려있는 인천아리랑과의 음원 대조작업을 거쳐 마침내 악보로 복원해낸 것입니다.
전국 각지의 아리랑 가운데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애환을 담는 등 특정 시대상을 반영한 아리랑은 인천아리랑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BTS는 아리랑을 타이틀로 내건 이번 공연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외세에 대한 저항정신이 엿보이는 인천아리랑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천 정체성의 소중한 한 줄기입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인천아리랑은 유튜브를 통해 트롯, 가야금 연주 등 다양한 버전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따스한 봄날, 인천아리랑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시길 권합니다. 인천아리랑이 좋았다면 ‘구독’과 ‘좋아요’도 함께.
-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