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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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그리운 금강산’ 같은 노래가 있었다며”라고추억할 그 날은 언제 오려나글. 김성배 문화비평가새얼문화재단이 2000년 8월 인천문화예술회관 광장에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를 세웠다. 높이 6m, 폭 6.4m, 무게 60톤의 돌 위에 악보와 가사를 새겼다. 현장에서 작곡가의 회고와 노래를 녹음재생으로 들을 수 있다.강화군이 2010년 5월 지역 출신의 작곡가 최영섭과 작사가 한상억을 기리기 위해 평화전망대에 세웠다.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새의 날개를 형상화해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사진: 심현우 작가)‘그리운 금강산’을 듣거나 부를 때면 무언가 진한 감정이 올라오곤 한다. 악보에는 ‘그리움에 사무쳐서’라고 적혀있어 곡을 어떻게 해석할지 알려주고 있다. 그럴 때 이 곡은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을 너머 오랜 세월 남과 북으로 갈라져 긴장과 대립을 이어가야 하는 안타깝고 슬픈 현실로 다가온다. 1961년 한국전쟁 11주년을 맞아 KBS가 ‘이 주일의 노래’란 코너의 하나로 이 곡을 기획했다. 강화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최영섭(1929~) 작곡가에게 의뢰했다. 같은 강화 출신이면서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 출신인 한상억(1915~1992) 시인이 미리 써 두었던 시를 작곡가에게 건네면서 만들어졌다. 본래 ‘그리운 금강산’은 ‘아름다운 내 강산’이라는 총 11편의 칸타타로 그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네 번째 곡이다. 이 곡은 노랫말을 되새길 때 더욱 아련하고 애틋하다. 우선, 첫 소절의 ‘주재런가(문화예술회관 노래비)’와 ‘주제런가(평화전망대 노래비)’가 각기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주재(主宰)’로 이해해야 ‘누가 이
2025-06-08 2025년 6월호 -
시민 행복 메시지 : 칼럼
‘건강옹진호’의 활약을 기대하며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차 안에 의학 설비를 갖춘 구급차를 국내 최초로 선보인 미국계 한국인 인요한 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의 청년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택시로 병원에 이송됐는데 의사의 권유로 더 큰 병원으로 향하다 택시 안에서 숨졌습니다. 그는 이후 목수, 철공 기술자와 함께 집 뒷마당에서 뚱땅거리며 신개념의 구급차를 제작했습니다. 구급차가 단지 환자 운송수단에 불과하던 시절 차 안에서 응급처치가 가능한 구급차를 만든 것입니다.“자네 아버지는 한국 사람처럼 살았고 한국 사람처럼 죽었네.”아버지를 잃었을 때 그가 아버지의 지인에게서 들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 서는 당시 열악했던 한국의 응급구조시스템이 투영됩니다. 제대로 된 구급차만 있었어도 ‘한국 사람처럼 (길에서 허무하게) 죽었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배 타고 물 건널 필요가 없는 육지가 이 정도였으니 섬은 오죽했을까요. 이 대목에서 잠시 섬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여보, 이 사람아! 의사 얼굴 구경이라도 한번 해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어서 눈을 뜨라고!”의사가 섬마을에 도착했을 때, 산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임신중독증으로 숨진 지 몇 시간은 된 듯했습니다. 이불 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산모, 그런 아내를 흔들어 깨우며 오열하는 남편, 산모가 걱정돼 달려왔다가 함께 눈물 짓는 동네 주민들…. 손 한번 써보지 못한 의사는 무력감에 젖어 얼룩진 천정만 바라보았습니다. 바다 건너 육지 병원을 찾아온 산모 남편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섬은 환자를 살리기에는 너
2025-06-08 202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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