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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IncheON | 하늘에서 본 인천

2026-07-06 2026년 6월호

바람이 흔들 때, 비로소 보인다


드론사진가 한상표, 

땅과 바다와 바람을 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한상표 드론사진가


소래습지생태공원의 아침. 2019년.

안개가 걷히기 전, 갈대밭과 풍차가 빛 속에 잠겨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들은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아내가 사진을 권했다.

큰아이의 오래된 사진기를 들고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갔다.


스러져 가는 소금창고 앞,

바람이 낮게 지나가고 있었다.

‘찰칵.’

렌즈에 비친 풍경보다

셔터 소리가 먼저 가슴을 뛰게 했다.


그 후로 그는 물길을 따라 걸었다.산에서 들로,

강에서 갯벌로, 다시 바다로.


그리고 2017년 겨울,

하늘에서 세상을 수직으로 내려다봤다.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모든 것이 하얗게 지워졌다. 지붕도, 담장도, 골목도.

검게 갈라진 물길과 그 위에 새겨진 발자국만 남았다.


그날 이후, 그가 담은 풍경들도 그랬다.

바람에 흔들리는 함초.

썰물 뒤 길게 남겨진 물길.염전 위를 느리게 지나가는

그림자.

파도에 밀려 흔들리는 물빛.

백 미터 아래, 모든 것은 그저 한 점이었다.


한 사람의 상실이

그를 땅과 바다, 바람 사이에 머물게 했다.


소래포구, 2019년.

백 미터 위에서도 사람의 기척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종도 갯벌, 2021년.

가을이 붉게 번져간다. 그 앞에 서면 말보다 침묵이 먼저였다.


영종도 갯벌, 2021년.

물길과 모래언덕이 엇갈린다. 바다는 넓고 깊다.


물의 이끌림 


영종도 갯벌, 2021년.

물길과 모래언덕이 엇갈린다. 바다는 넓고 깊다. 


슬픔의 끝에서 사진이 시작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찾아온 우울증은 깊고 무거웠다.

사진기를 들기 전까지 그 무게를 어디에도 내려놓지 못했다.


안개 낀 소래습지생태공원.

소금창고 벽면에 겨울 햇살이 희뿌옇게 잠겨 있었다.

갯벌 가장자리로 바람이 낮게 지나갔다.

한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멀리 포구 쪽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웅’.

얕은 물결 위로 겨울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날 이후, 발길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향했다.

“이끌림의 끝에는 늘 물이 있었습니다.

산에서 들로, 강에서 갯벌로 흘러가듯

저도 모르게 물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소래 바다는 낮고 소박했다.

갯골마다 물때가 들고 났다. 낡은 어선들이 포구에 묶여 있었다.


영종 갯벌은 넓고 깊었다.

가을이면 염생식물이 붉은 물결처럼 번져갔다. 

그 앞에 서면 말보다 침묵이 먼저였다.


강화 물길은 풍요로웠다.

갈라지고 또 갈라진 물줄기가 대지 끝까지 이어졌다.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흐릿했다.


주말마다 같은 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대지는 한 번도 같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바람이 바뀌면 물결의 방향도 달라졌다.

썰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새로운 물길이 생겨났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갯벌의 빛이 달라졌다.


같은 풍경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래포구 옛 철길, 2018년.

풍경이 지워지고 선과 그림자만 남는다.

수직으로 내려다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영종도 갯벌, 2021년.

물길이 갈라지고 또 갈라진다. 땅인지 바다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강화도 가을 들녘, 2020년.

대지가 가장 솔직해지는 계절, 땅의 결만 남는다.


강화도, 2023년.

하늘 아래, 모든 것은 한 점이었다.



검수리의 눈


소래포구 옛 철길, 2018년.

풍경이 지워지고 선과 그림자만 남는다.

수직으로 내려다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강화도, 2023년.

하늘 아래, 모든 것은 한 점이었다.


영종도 갯벌, 2021년.

물길이 갈라지고 또 갈라진다. 

땅인지 바다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강화도 가을 들녘, 2020년.

대지가 가장 솔직해지는 계절, 땅의 결만 남는다.


드론을 택한 이유는 하나,

세상을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전문 용어로는 나디르 뷰Nadir View.

배경이 사라지고 피사체만 온전히 남는다. 


드론에 이름을 붙였다. ‘검수리’, ‘참매’.

하늘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는 새.

비행 전에 그는 늘 기체를 한 번 손으로 쓸어내린다.

“오늘도 잘 부탁한다.”


바람이 거센 날이면 검수리가 허공에서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독이며 말했다.

“괜찮아. 조금만 더, 이것만 찍고 가자.”


“검수리가 날갯짓하며 하늘에 오르면,

카메라가 되고, 나의 눈이 되고, 마음이 됩니다.

나는 그가 보내주는 대로 받아 적을 뿐이지요.”


백 미터 상공.

커다란 건물도, 오래된 나무도 한 점이 된다.

그 한 점 안에도 저마다의 생명이 있다.

풀 한 포기, 벼 한 줄기, 갯벌의 함초 한 뿌리.

“이들이 나를 찍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보리밭을 찍던 날이었다.

같은 밭, 같은 씨앗인데 보리마다 빛깔이 달랐다.

같은 땅. 같은 계절. 

그런데도 저마다 다른 속도로 익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처럼.’


겨울이 가장 솔직한 계절이다.

잎이 지고 가지만 남는다.

눈이 내리면 경계도 사라진다.

남은 건 땅의 결과 바람의 방향뿐이다.


백 미터 아래, 작은 배 한 척이 물 위에 떠 있었다.

그는 한참 그 작은 점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흔들릴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것들이 보였다. 


영종도 갯벌, 2022년.

갯벌 위로 구름이 내려앉는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다.




찍어드리지 못한 얼굴


영종도 갯벌, 2022년.

갯벌 위로 구름이 내려앉는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다.


인천대교, 2023년.

빛이 사라지는 자리에 오래 머문다.


염전에는 소금을 일구는 사람이 있었다.

섬에 있는 염전들은 대부분 백여 년 전

흙과 돌을 지게로 날라 만든 간척지 위에 있다.

선대로부터 이어온 땅이었다.


염부의 손은 갈라지고 터져 있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소금을 긁어내는 동안

땀이 소금처럼 말라붙었다.

“소금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랍니다.”


사람이 머무는 자리에는 저마다의 온기가 남는다.

백 미터 위에서 내려다봐도

그 기척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꽃은 피는 순간보다 흩날릴 때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지금 가장 찍고 싶은 장면도 그런 것이었다.

인천대공원 호수 위로 꽃잎이 비처럼 내리는 날.

남풍이 불어오면 꽃잎들 사이로 바람 소리가 흔들릴 것이다.


“사진은 지나가는 시간을 머무르게 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셔터 소리가 처음 가슴을 뛰게 했던 날부터

그는 늘 그런 순간을 기다려왔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만 남긴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휴대폰 속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삼십여 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수목원에 간 날이었다.

햇살이 두 사람의 어깨에 나란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 사진은 지금도 시골집 안방에 걸려 있다.


“두 분이 다 돌아가신 뒤에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카메라로 제대로 찍어드리지 못한 게

아직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처음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정작, 찍어드리지 못했다.


검수리가 오늘도 하늘로 오른다.


한상표 드론사진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재능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과에 재학 중이다. 1990년 주안에 한의원을 열었으며, 이후 삼십여 년간 인천에 살며 땅과 바다, 바람의 풍경을 기록해 왔다. 개인전을 10회 열었고, 사진집 『바람의 숨결』 등 4권을 출간했다. 광원아트홀 사진공모전 최우수상,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코리아포토상을 수상했다. 2023년부터 인천일보 사진 칼럼 「한상표의 드론으로 본 세상」을 연재 중이며, 2024년부터 신안군 섬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간의 삶과 노동의 흔적이 스며든 대지를 드론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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