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IncheON | 이기본 작가
흙에서 다시 피다
사진가 이기본,
유년의 풍경으로 돌아가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이기본 사진가

2019년, 강화도, 부추

2015년, 강화도, 수국
땅에는 계절이 있다. 심고, 자라고, 거두고, 다시 비운다.
바다에는 계절이 없다. 밀려오고, 부서지고, 다시 차오른다.
이기본은 그 두 풍경 사이를 오간다.
인천 계양구 작전동, ‘된밭’이라 불리던 동네였다.
대문 앞은 온통 밭이었고, 밭고랑 몇 개를 넘으면 논이 저 멀리까지 이어졌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머니가 밭고랑 사이로 허리를 굽혀 김을 맸다.
아이는 그 곁에서 흙을 만지고 바람을 따라 뛰어다녔다.
호박, 오이, 가지, 상추, 고추, 부추, 양파, 대파, 쪽파, 배추, 열무….
그 땅은 어린 그의 눈에 커다란 곳간이었다.
중학교 2학년, 아버지가 필름 스무 통을 건넸다.
“잘 찍어봐… 필름은 또 사다 줄게.”
찰칵.
낮은 지붕과 골목, 마당, 그 너머 들판이 필름 위에 나란히 내려앉았다.
소년이 처음 붙잡은 풍경이다.
며칠 뒤 동네 사진관에서 받아 든 사진 봉투.
열어보던 손끝이 떨렸다.
그 안에, 처음으로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담겨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계절

2009년, 영종도

2012년, 영종도
학교까지는 마찻길을 따라 삼십 분을 걸어야 했다.
논두렁과 밭두렁을 몇 번이고 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발걸음이 느려졌다.
떡볶이 한 접시를 친구들과 나눠 먹고,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봤다.
가을이면 추수가 끝난 논 한가운데 볏짚단이 쌓였다.
그 위로 몸을 던지듯 풀썩 뛰어내렸다.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논이 놀이터가 됐다. 썰매를 지치고 스케이트도 탔다.
가장 기다려지던 건 콩서리였다.
남의 밭에서 콩을 훑고 검불과 지푸라기를 그러모았다.
불을 붙이면 매캐한 연기가 훅 끼쳐왔다.
타닥, 타닥. 콩깍지가 튀며 콩이 익어갔다.
“다 됐다!” 누군가 외치면 너나없이 손을 뻗었다.
검게 익은 콩을 한 움큼씩 집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제야 서로의 얼굴이 보였다. 입술도 뺨도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깔 웃음이 터졌다.
도랑가에 자라는 풀을 아이들은 ‘개구리 낚싯대’라 불렀다.
그 풀을 꺾어 개구리를 낚아 불에 구워 먹은 날도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밭일을 하다가도 아이가 곁에 다가서면 허리를 펴고 웃었다.
“늘 인자하셨던 그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여름도, 그 겨울도 다시 오지 않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할머니가 밭일을 멈추고 돌아볼 것만 같다.
빈 들판에서, 다시

2006년, 충남 태안, 무

2022년, 강화도
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지셨다는 소식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가 더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병명도 모른 채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어느 날이었다. 차 안에는 오래도록 침묵만 흘렀다.
운전대를 잡은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부족한 아들이라 죄송합니다.”
한참 뒤 올려다본 룸미러 너머로 아버지가 웃고 계셨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었다.
병원을 돌고 돈 끝에야 병명을 알았다. 루게릭병이었다.
입원과 퇴원이 반복될수록, 아버지의 몸은 빠르게 쇠약해졌다.
서울 삼성동 작업실로 다시 나갔지만, 예전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밥때가 되면 몇 술 뜨다 말고 일어섰다.
작업실로 돌아와서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생활도 함께 무너졌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지경까지 갔다.
그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강원도 홍천강을 찾았다. 잊고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처음 사진을 배우던 그날처럼, 다시 셔터를 눌렀다. 찰칵.
춘천으로 발길이 이어졌다.
강릉과 동해, 삼척과 고성으로.
다시 영종도와 강화도, 선재도와 영흥도로.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발길이 닿은 곳마다 사진기를 들었다.
그 사이, 2007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긴 여정의 끝에서, 그는 인천으로 돌아왔다.
땅과 바다, 그 사이

2012년, 강화도

2018년, 강화도, 양파

2022년, 강화도
2016년, 강화도 바다 가까이에 작은 암실을 꾸렸다.
그 앞 밭머리에 서면, 오래전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굽은 등 위로 서서히 내려앉던 저녁 빛.
툭, 툭. 도마 위에 칼이 닿던 소리.
대파가 자라고, 쪽파가 올라오고, 양파꽃이 핀다.
그 밭이 어린 시절 가족을 먹여 살린 곳간이었다면,
지금 그의 곳간은 사진이다.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이 필름 위에 한 장씩 쌓여 간다.
땅의 계절이 지나면, 그는 다시 바다로 향한다.
어제의 빛이 사라지고 어제의 물결도 지나간다.
그날의 풍경 앞에 사진기를 세운다.
셔터를 열어 둔 채 1분을 보내는 날도, 20분을 보내는 날도 있다.
피사체 본연의 색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
필름 위에 빛이 켜켜이 쌓이는지,
태양의 위치가 달라지는지만 바라본다.
그렇게 오래 바라본 끝에 남긴 사진 한 장.
사진은 지나간 시간을 붙잡지 못한다.
다만, 잊고 있던 시절을 다시 만나게 한다.
이기본 사진가
인천 계양구 작전동에서 태어났다. 상명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미지사이언스를 공부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티칼리지에서 컬러 포토그래피를 수학했다. 2013년 개인전 『대지의 숨-바람』을 시작으로 『층첩』, 『논두렁 밭두렁』 등을 개최했으며, 전국 순회 개인전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집 『EUPHORIA』와 『과거에서 보낸 편지』를 출간했다. 상명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쳤으며, 현재 강화도 개인 암실에서 피사체 본연의 색을 기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건넨 필름 스무 통에서 그의 사진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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