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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도시, 인천 - 열린 공간, 미술관 | 오소회(五素會), 인천미술의 꿈을 이어가다
오소회(五素會), 인천미술의 꿈을 이어가다
글. 신선영(인천미술사 조사·연구 학술용역팀 연구원)

(출처: 「우문국 50년 예술세계」, 신세계갤러리, 1998)
제1회 오소전-은성다방에서(왼쪽부터 김영건, 우문국, 박응창, 윤갑로)

왼쪽부터 김영건, 박응창, 우문국, 윤갑로, 이경성
1969년 4월, 인천 신포동의 은성다방(銀星茶房)에서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인천 시인 김윤식이 회상하듯이 ‘삐걱거리는 목조계단’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다실 한쪽 벽에 그림들이 걸렸다. 오늘날의 미술관이나 전문 화랑과 비교하면 초라한 전시장이었지만, 그곳에는 당시 인천화단의 현실과 함께 치열하게 예술가의 삶을 이어온 작가들의 소망이 함께 담겨 있었다. 전시의 주인공은 박응창(朴應昌, 1908~?, 서양화), 윤갑로(尹甲老, 1913~?, 前 인천시장), 김영건(金永健, 1915~1976, 서양화), 이경성(李慶成, 1919~2009, 미술평론가), 우문국(禹文國, 1917~1998, 한국화)이었다. 이 전시가 바로 오소회(五素會) 창립전이다.
『월간경기』(1969.11)에 실린 우문국의 「오소자변(五素自辯)」에 따르면, 1969년 봄 우연히 은성다방에서 김영건과 이경성을 만난 우문국은,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나이 오십이 넘은 사람끼리 동인전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그 자리에서 나이 50대 이상의 인천 화가 5명을 회원으로 구성했고, ‘오소회(五素會)’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소회라는 명칭은 이경성의 착상인 듯하다. 오소회는 50세 이상의 작가 5명이니 ‘오(五)’자가 들어갔고 ‘소(素)’는 소박하고 소탈하다는 뜻으로 모임의 성격과 잘 맞아 넣었다고 한다. 1969년 4월 19일에 열린 창립전을 시작으로 1978년 12월 제8회로 마지막 전시를 치를 때까지 10년 동안 창립 회원 5명과 함께 유희강, 정재흥, 오석환, 황병식 등 인천 작가들이 참여했다.
오소회는 얼핏 보면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결성된 화가들의 친목 모임인 것 같지만, 서울로 문화예술의 인력과 기반이 집중되던 시기, 인천에 남아 지역 화단을 지키려 했던 미술인들의 실천적 행동이었다. 개항 이후 인천은 외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이자 급격한 변화가 반복되는 도시였다. 그러나 항구도시의 개방성과 역동성은 지역 문화의 지속성이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인구 이동이 잦았고, 한국전쟁을 겪으며 도시의 기반도 크게 흔들렸다. 더욱이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조건 때문에 인천에서 성장한 예술가들조차 활동 기반을 찾아 서울로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인천은 수많은 예술인을 배출했지만, 정작 그들의 활동과 성과를 지역 안에 축적하기는 어려운 도시였다.

제3회 오소전 리플렛(출처: 스페이스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인천 화단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였다. 대한미술협회 인천지부, 자유미술동인회, 인천미술협회 등 여러 미술단체가 결성과 해체를 거듭하면서 인천 미술계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비록 조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흩어지고 다시 모이기를 반복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지역에 남아 화단을 지키려 했던 미술인들이 있었다. 오소회를 창립한 박응창, 김영건, 우문국, 이경성 등은 이러한 미술단체의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후배 작가들을 이끌어 온 인천화단의 구심점이었다. 이처럼 오소회는 어느 날 갑자기 개인의 제안으로 결성된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전후 인천화단을 지켜온 미술인들의 오랜 연대와 신뢰 위에서 태어난 결실이었다.
지역 화단을 유지하는 힘은 제도와 단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술인들이 자유롭게 만나 작품을 보여주고 예술을 논하며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당시 인천에는 전문 화랑이나 전시장이 거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다방이 문화예술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됐다. 그 가운데 신포동의 은성다방은 인천화단의 상징적인 문화공간이었다. 화가와 평론가,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인천 미술의 현실과 미래를 이야기했고, 완성된 작품을 서로 평가하며 새로운 전시를 구상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따뜻한 차를 마셨다. 다방의 벽은 곧 전시장이 됐었고, 작은 탁자는 토론의 장이 됐다.
1969년 4월, 은성다방에서 열린 오소회 창립전은 단순한 첫 전시가 아니라 ‘인천 사람들에 의한 인천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겠다는 선언이 아니었을까. 오소회는 작품을 발표하는 모임을 넘어, 인천이라는 도시에 예술의 뿌리를 내리고 지역 화단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려는 문화적 실천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2028년 개관을 앞둔 인천시립미술관이 오소회 미술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인천미술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공간으로서, 예술인들이 서로 만나 창작과 토론을 하고, 시민과 함께 지역의 기억을 축적하며, 새로운 인천미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열린 문화공간이 될 때, 은성다방에서 시작된 인천미술의 꿈은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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