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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인천입니다_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2026-10-05 2026년 10월호

골목에서 만난 인천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살다 보니 오게 됐고, 살다 보니 남게 됐다. 특별한 결심 없이 시작된 인천에서의 

삶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고,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시간들이 두텁게 쌓였다.

〈살아보니 인천입니다〉는 인천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담은 인터뷰 연재다. 

출근길의 새벽바람 냄새, 집 앞 편의점 사장님, 자주 가는 동네마다 쌓인 

추억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기억한다. 

인천을 만들어가는 시민들의 이야기. 살아보니 인천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 윤은혜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범기 포토디렉터



익숙한 풍경 너머의 사람


골목 모퉁이마다 삐뚤빼뚤 쌓인 폐박스와 폐지들. 덜그럭거리는 리어카를 끌며 체구만 한 폐지를 옮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모두에게 제법 익숙한 풍경이다.

익숙하다는 건 어쩌면 자세히 보지 않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폐지를 줍는 어르신’이라 생각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런데 그 풍경에서 발걸음을 멈춘 사람이 있었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그는 폐지 너머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어르신, 너무 멋진 일을 하고 계시네요.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요. 진짜 대단하십니다!”

언젠가 폐지를 정리하던 한 어르신에게 다가가 건넨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어르신은 많은 감정이 스치는 듯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하는 일을 이렇게 봐주고, 좋게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안쓰럽고 고되게 보였던 일이, 어르신에게는 매일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일이었다. 기우진 대표가 주목한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폐지 줍는 어르신을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경을 지키며 ‘일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그 시선에서 러블리페이퍼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러블리페이퍼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해 

리어카를 제작하기도 했다.



길에서 시작된 질문


2013년, 인천의 한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기우진 대표. 출퇴근길마다 자꾸 그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었다. ‘어르신들은 왜 매일 폐지를 주우실까.’ 처음에는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알아볼수록 가장 뚜렷했던 이유는 결국 경제적인 문제였다. 당장의 병원비, 공과금, 식비가 없어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많았고, 그들을 지원할 사회적 시스템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한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교회 청년들과 함께 봉사단체를 만들고 폐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나오는 폐지를 기부받아 팔고, 그 돈으로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원했다. 그렇게 3년간 현장을 오가며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러다 폐지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며 다른 고민이 생겼다. 같은 양의 폐지를 주워도 어르신들이 손에 쥐는 돈은 계속 줄어드는 것이다. 단순히 폐지를 모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때 폐박스로 캔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에게 폐박스를 비싸게 구매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경쟁력을 더하기 위해 재능기부 작가들의 그림을 더했고, 그렇게 만든 작품을 직접 판매하기도 했다.

버려지는 종이가 새로운 물건이 되고, 그 과정에서 어르신의 노동에 더 많은 가치가 돌아가는 경험.

“그때 처음으로 이게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2017년, 러블리페이퍼의 여정이 시작됐다. 그리고 2024년 비영리 스타트업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진정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빈곤 노인이 겪는 문제를 함께 풀어보겠다는 다짐이었다.



 러블리페이퍼와 함께하고 있는 어르신들.폐박스로 제작한캔버스를 포장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하나하나 포장하는 모습



폐박스 하나 속에 담긴 우리 동네의 규칙


인천 골목 구석구석을 오래 다니다 보면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주로 어디로 향하는지도 자연스럽게 보인다. 다세대 주택과 오래된 상가가 많은 구도심, 시장 주변에는 폐박스가 많다. 상가 앞에 내놓은 박스를 가져가기도 하고, 가게 주변을 정리하는 대가로 폐박스를 얻어가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정리해 주시면 상가 주인 분들도 가져가라고 해요. 서로 약속이 되는 거죠. 어르신들이 정말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져가세요.”

폐지를 줍는 일에도 동네마다 나름의 질서가 있는 셈이다. 폐지가 많이 나오는 곳에는 수거하는 어르신들이 몰린다. 한 구역에 열댓 명이 모여 경쟁하기도 한다. 반면 송도나 청라, 영종 같은 신도시는 상대적으로 잘 가지 않는다. 고물상이 없거나 멀고,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폐박스를 자체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인천은 이런 도시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오래된 동네와 새로 만들어진 도시가 공존하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의 삶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도 인천의 오래된 동네에서 자랐다. 십정동 산동네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인천과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기억하는 인천은 거창한 도시의 모습보다 이런 골목 풍경에 가깝다. 오래된 동네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버려지는 폐박스 하나에도 누군가의 하루가 연결되는 곳.

“인천은 제 고향이기도 하고, 문제를 처음 발견한 곳이기도 하니까요. 여기서 더 깊이 해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기우진 대표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들


현재 러블리페이퍼는 어르신 세 분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물품 지원과 정서 지원, 사회적 지지까지 아우르는 것이 러블리페이퍼의 방식이다. 일이 곧 관계가 되고, 관계가 곧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구조다. 기우진 대표에게는 오래 잊히지 않는 어르신이 한 분 더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거리에서 깡통을 줍고 있던 어르신. 언젠가 어르신들을 고용할 생각이라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드렸다. 당장은 일자리를 드릴 수 없지만, 꼭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2년 뒤, 실제로 고용할 수 있는 때가 되어 어르신을 만난 날. 어르신은 기우진 대표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꺼내 보였다.

“2년 동안 그 종이를 가지고 계셨더라고요. 언제 전화가 오나 계속 기다리셨대요. 그때부터 말의 무게, 책임을 좀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짧게 건넨 약속 하나. 누군가는 그 약속을 2년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어르신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그런 마음을 주고받는 일인지 모른다. 기우진 대표는 사업이 커지며 예전처럼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하지 못하는 만남을 다른 누군가가 이어갈 수 있도록 청년과 어르신이 만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함께 나들이를 가고, 그림을 그리고, 플로깅을 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어르신과 만남을 이어가는 청년이 생기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 역시, 어쩌면 그런 관계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익숙해서 지나쳤던 한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것. 한번 맺은 관계를 오래 기억하는 것. 그가 살아보니 인천은,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도시였다.


러블리페이퍼


자원재생활동가(폐지수거어르신)과 환경을 연결하는 비영리 스타트업. 폐지로 만든 피크닉매트, 보냉백, 랩탑백, 메신저백, 카드지갑 등을 판매하고 있다. 정기후원으로도 함께할 수 있다.

https://loverepaper.org/


 

러블리페이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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