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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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명-서구의 옛 이름 ‘서곶’
인천 지명서구의 옛 이름 ‘서곶’ 1988년 1월, 북구에서 서구가 떨어져 나와 새로운 구區로 독립했다. 서구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 전에는 흔히 ‘서곶’으로 불렸다. 서곶이란 ‘서쪽에 있는 곶’이라는 뜻이다. 이 일대의 행정 중심지였던 부평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서쪽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서구도 인천시 전체로 볼 때는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지만, 북서구가 아니라 서구라고 부른다. 이 역시 북구에서 떨어져 나온 구이고, 지금의 부평과 계양인 북구를 기준으로 보면 서쪽에 있기에 붙인 이름이다. 우리말 땅 이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곶’은 ‘바다나 호수 등을 향해 뾰족하게 내민 땅’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이렇지만 땅 이름에서는 물가뿐 아니라 육지 안에서 ‘산줄기가 길게 뻗어 내려온 곳’에도 종종 ‘곶’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한마디로 ‘길고 삐죽하게 내민 땅’을 곶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串이라 쓰며, 岬(갑)이라는 한자도 곶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곶을 다시 정리하면, 부평 중심지를 기준으로 봤을 때 서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곶 동네라는 뜻이 된다. 지금은 청라국제도시를 비롯한 대규모 매립 사업으로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지만, 원래 서곶은 계양산에서 천마산과 원적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황해 바다를 향해 완만하게 늘어져 내려온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곶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쓴 이름이었기에 1988년 서구가 북구에서 독립할 때 ‘서구’가 아니라 ‘서곶구’로 부르자는 의견도 꽤 많았다고 한다. 또한 서구로 이름이 정해진 지 오래인 지금도 서곶초등학교 등의 이름에 남아 여전히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인천 소사2001. 11. 15 영흥대교 개통선재
2021-11-01 2021년 11월호 -
仁生 사진관-낭만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사연 유서진(연수구 동춘동)4년 전 11월, 이름처럼 자유롭던 시절 ‘자유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계절을 가릴 것 없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자유공원의 백미는 가을입니다. 머리 위로 흐드러진 단풍을 배경 삼아 낙엽 밟으며 사뿐사뿐 걷던 그 길은 추억이고 낭만이었습니다. 세월에 물들어가는 나뭇잎 색깔처럼, 4년이란 시간은 삶에 많은 변화를 안겨줬습니다. 2018년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고, 올해 6월에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도 얻었습니다. 자유는 줄었지만 행복은 늘었습니다. 곧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할 아이와 함께 자유공원을 걷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낭만적인 이 계절, 무르익은 가을처럼 평생을 함께하며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어갈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仁生 사진관’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인천을 무대로 살아가고 있는 시민 여러분의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며, 보내주신 사진을 실어드리거나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어드립니다.보내실 곳 : goodmorningic@naver.com 문의 : 시 소통기획담당관실 032-440-8305
2021-11-01 2021년 11월호 -
칼럼 ‘배호 50주기’와 인천 대중음악사
‘배호 50주기’와 인천 대중음악사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연안부두 해양광장에 있는 배호 노래비대학생이던 1980년대 중반 ‘도화가요제’ 본선에 나갔었다. 인천대학교가 매년 축제 때 개최하는 창작곡 경연대회였는데 대학가에선 제법 유명했다. 친구가 인천대 ‘포크라인’이란 통기타 동아리 회원이었는데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도 참가 기회를 주었으므로 친구와 듀엣으로 출연할 수 있었다. 수상권엔 들지 못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바이브레이션 아닌 바이브레이션으로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떠오른다. 걸출한 뮤지션을 많이 배출하던 인천은 대학생들까지도 대중음악 분야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통기타와 그룹사운드가 대세였던 1980년대만 해도 인천전문대학 밴드 ‘4막5장’ 보컬이던 이선희가 ‘J에게’란 노래로, 인하대학교 밴드 ‘꼬망스’ 출신 박영미는 ‘이젠 모두 잊고 싶어요’란 노래로 각각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음악 도시 인천’의 실력을 보여주었다.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50년대 이후이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인천에 주둔한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은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다. 견인차는 미군을 고객으로 하는 음악 클럽이었다. 부대 안은 물론이고 부대 주변엔 미군을 상대로 라이브 공연을 하는 음악 클럽이 성업을 이루었다. 방송이나 무대가 변변치 않던 시절, 클럽은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가수의 꿈을 꾸는 많은 사람들이 미8군 무대에 서기 위해 부대 근처에서 합숙을 하며 피나는 연습에 매진했다. 인천 출신 많은 음악인들은 그렇게 미군 클럽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으며 가수
2021-11-01 2021년 11월호 -
장수동 은행나무 할아버지
장수동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850년 동안,나무는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언제나 한자리를 지켜왔습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는 그렇게 계절마다 다른 그림이 되고 비와 바람, 눈을 피해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었습니다.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수동 은행나무를 우린 더 자주 찾아가고 더 잘 보살펴야겠습니다.어쩌면 장수동 은행나무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살피고 있는 것이겠지만.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
2021-11-01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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