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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터법’전환 근대화 신호탄
‘미터법’전환
근대화 신호탄
글 조우성 시인·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도량형(度量衡)’이란 단어는 의외로 낯이 설다. 많이 쓰긴 쓰는데, 그 뜻을 설명해 보라면 망설이게 된다. “길이, 부피, 무게 또는 이를 재거나 다는 기구 혹은 그 단위법”이라고 답하면 정답이다. 더 자세히 풀이하면, ‘도(度)’는 길이 또는 길이를 측정하기 위한 자, ‘양(量)’은 부피 또는 되, ‘형(衡)’은 무게 또는 저울을 뜻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길이, 부피, 무게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의 양을 헤아리는 행위와 그를 위해 사용하는 모든 수단이나 기준으로서의 단위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계량 또는 계측이라는 의미까지도 이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그 개념은 언제부터 싹 텄을까? 아마도 먼먼 고대부터였으리라 짐작된다. 사람이 모여 마을이 생기고, 곡물을 생산해 저장, 관리하면서 신체의 일부를 초보적인 도량형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 후 경제생활이 점차 활발해지면서 물물교환이 불가결한 생활수단이 되고, 그때마다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규준이 되는 도량형을 요구했을 것은 당연한 이치다. 손바닥을 펴서 길이를 재고, 손을 웅크려 양을 가늠했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도량형 역사도 꽤 오래다, 그러나 이 땅의 백성들은 나라 밖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최근세까지도 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둥글다고 믿었다. 바다 멀리 나가면, 세상의 아래로 떨어져 황천으로 간다고 생각했으니 말과 피부색이 다른 수많은 인종과 나라가 세계에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고려시대에 처음 만든 ‘건원통보’를 비롯해 동국중보, 해동통보, 상평통보 등도 중국의 엽전을 본뜬 것이었고, 모습을 ‘원형방공(圓形方孔)’ 즉 ‘둥근 모양에 네모난 구멍’이 뚫린 형태로 한 것도 그들의 우주관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 엽전 중에 가장 활발히 유통된 것은 1678년(숙종4)에 만들기 시작한 상평통보인데, 인천이 개항되던 해인 1883년 서구식 조폐국인 전환국(典?局)이 설치되자 자취를 감춘 것은 생활경제사 변천의 중요한 대목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비로소 ‘세계’와의 교류에서 통할 수 있는 근대적 화폐를 만들기 시작한 혁명적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 같은 경제 개혁의 길을 명문화한 것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이었다. 비록 피동적인 제도상의 개혁으로서 식민지화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비판은 있으나, ‘도량형의 개정’ 등을 분명히 함으로써 근대화를 촉진시킨 획기적인 계기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도량형기는 중국의 것을 표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중국에서와 같은 도량형 제도를 도입하여 기강을 세우려고 애를 써 왔으나 관료, 지주, 상인들이 도량형 기구의 규격을 제멋대로 늘려 빌려줄 때는 적게 주고, 되받을 때는 많이 거두어 궁핍한 백성을 착취해 사회와 경제 질서를 무너뜨렸던 예는 허다했다.
더 큰 문제는 개항 직후 나타났다. 국제 교역에 비로소 나서자 서로 다른 길이와 무게와 부피를 환산하여 사용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고, 그 자체가 무역활동을 저해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같은 인식 아래 우리나라가 세계가 인정하는 공통의 도량형을 도입한 것은 그 한참 뒤인 1905년 대한제국 법률 제1호 ‘도령형법’을 공포한 뒤였다.
그러나 도량형의 근대화는 생각보다 더뎌 민간에서는 전통적으로 써 왔던 척관법을 더 애용했다. 오래전부터 역대 정부는 미터법 사용을 역설해 왔지만, 1자는 30.3㎝, 1관은 3.75㎏, 1되=2,4리터, 1평은 3.3㎡… 이런 식으로 척관법과 미터법을 혼용해 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나 주택의 넓이를 나타낼 때는 ‘평(坪)’을 써 왔는데, 이 같은 척관법은 한국형 온돌 아파트를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는 오늘의 국내외 경제와 무역 상황과는 거리가 먼 이중 잣대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산업규격에서는 ‘평’ 대신 제곱미터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7년 7월 산업자원부는 ‘평’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였고, 이를 위반할 때는 적지 적은 과태료를 내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일상에는 자, 간, 정, 리(길이), 평, 단보, 정보(넓이), 홉, 되, 말, 섬(부피), 돈, 냥, 근, 관(무게)이 머뭇거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세계 10대 무역국가의 위상은 말로써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온갖 상품을 만들어 지구촌 오대양 육대륙 시장에 내다팔아야 사는 우리사회가 정작 세계에는 통하지 않는 전통 도량형을 묵수한다면, 그것 또한 쇄국주의임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미터법을 적극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고 본다.
‘별난 역사, 별난 물건 시리즈에 게재된 다양한 도량 관련 물건의 실제 모습은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인천근대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엔 희귀한 근대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료는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문의 76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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