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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을 꿈꾼다

2011-05-31 2011년 6월호

 

그래도 희망을 꿈꾼다

위암 투병 중인 노동자 서병철

 

 

1987년 6.10항쟁 당시 대한민국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는 용광로였다. 그래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억눌려 살아왔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더 절실하고 뜨거웠다. 민주노동자, 진짜노동자 서병철(52)씨도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다.
서씨는 1986년 인천 영창악기에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87년 6월 항쟁이후 노동자 대투쟁을 이끌었고, 영창악기 내 민주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민주노조 건립이라는 쉽지 않은 싸움에서 그는 파업투쟁을 주도했고, 파업의 대가는 1년 여간 옥고로 이어졌다. 투옥과 해고를 거치면서 1992년 해고무효소송에 승소했고 다시 영창악기에 복직한다.
그가 노동자의 삶과 사회적 정의에 관심을 갖고 진짜 노동자로 살아 온 데는 그의 삶과 연결돼 있다. 빈농의 집안에서 초등학교 졸업이 마지막 학력인 그는 14~15세의 어린나이에 이곳저곳을 떠돌며 공장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일찍부터 노동자로 살면서 사회의 부당함, 못 배운 설움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그러다 이런 삶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노동자도 인간대접을 받는 세상에 대한 열망에 눈을 뜨게 된다. 사람사는 세상은 그가 그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이기도 했다.
그는 2006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서구 구의원에 출마했다 낙선한다. 그러던 중 굴곡진 삶과 세상과 부딪쳐 살아온 인생에 2009년 병마가 찾아왔다. 위암 3기 말. 이미 병원에선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였다. 서씨는 위암판정을 받은 후 11번의 방사선치료를 견뎌냈고, 재발한 뒤에도 독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아들 둘(고1, 중1)을 키우고 있다.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아직 어린 작은 아들은 항상 눈에 밟힌다. 그 아이가 고1이 될 때까지는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절실했다.
우리사회가 민주화를 이룩한 데는 적잖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안락한 삶, 부귀를 쫓지 않고, 사회정의를 애쓴 분들이다. 그런 분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부채감을 느낀다. 위암투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씨에게 뜻있는 분들의 온정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글 이용남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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