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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방담(放談)
터미널 방담(放談)

글 박규홍
인천교통공사 CEO
인천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AID아파트가 남구 도화동에 준공돼 5백여 가구가 입주를 시작한 1975년. 남구 용현동 614 경인고속도로 진입로 입구에 인천시외버스종합터미널이 첫선을 보였다. 인천시가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고속버스와 시내외 버스를 수용하기 위해 대지 5천여 평에 버스 2백34대를 공동 수용할 수 있는 터미널을 만든 것이다. 당시 인천의 상주인구는 76만7천여 명. 택시 4백여 대가 주정차할 수 있는 연계 교통망까지 들어서 용현동은 하루아침에 인천 최고의 교통 요충지로 떠올랐다.
우마차가 물류운송수단으로 여전히 다니던 상황에서 현대식 건물에 편안함을 갖춘 터미널 대합실은 지금과 비교하면 공항대합실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식을 찾아 온 노부모와 휴가 나온 장병, 여정을 즐기는 여행객이 북적이던 곳. 만나는 기쁨과 헤어지는 서운함, 기다리는 설렘 그리고 삶의 여유까지 사람냄새 물신 풍기던 곳, 바로 용현터미널이었다.
인천에 시외버스터미널의 역사가 시작된 지 46년, 나는 지난 97년 새롭게 단장한 관교동 인천종합터미널 대합실에 서 있다. 기다림에 지친 승객이 누어있던 기다란 나무의자가 인체공학을 감안한 안락의자로 변하고, 수기로 작성하던 버스시간 안내판은 전자게시대로 바뀌었다. 터미널음식점과 다방 자리에는 신세대가 즐겨 찾는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고, 과거 용현터미널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무인발매기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버스터미널이 외면 받고 탑승객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자가용이 없거나 운전이 어려운 촌로와 중년의 아주머니가 터미널의 명분을 겨우 이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고속도로가 확대되면서 운행구간이 늘어나고 전국 3대 도시 인천의 위상에 걸맞게 인천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이면 수도권 인근으로 출퇴근하는 3,40대 회사원들이 길게 줄을 서고, 휴가 나온 군장병과 지방에서 오신 어르신, 여행을 떠나는 가족과 연인으로 인천종합터미널은 언제나 북적인다.
전국 팔도의 방언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핸드폰을 든 신구세대가 한데 어울려 인천을 만나고 인천과 헤어지는 곳. 인천종합터미널은 신구세대가 공존하는 문화콘텐츠의 장으로 성장했다. 이번 주말엔 사람냄새 물씬 나는 인천터미널에서 따사로운 봄 정취를 따라 여유롭게 여행을 떠나볼까, 비단 나만 생각하는 작은 바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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