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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봤다고요? 다시 와도 또 반할걸요

2012-05-02 2012년 5월호

 

와봤다고요?
다시 와도 또 반할걸요


5월이다. 봄바람이 향기롭다. 꽃향 품은 바람이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어디로든 길을 나서고 싶다. 엄마와 아빠에게 나들이 가자고 졸라야겠다. 초등학교 5학년인 내가 집에 가만히 있기엔 5월은 너무 눈부시다. 게다가 이달엔 어린이날이 있다. 그래서 엄마 아빠 팔짱 끼고 무조건 고고 씽 ~

글ㆍ사진. 김민영_자유기고가

 

 

조선시대 양반과 만나다
월미도에 들어서자마자 오래된 집들이 보인다. 초가집과 기와집. 조선시대의 집들이다. 책에서만 보던 집들이 눈앞에 있다. 연못도 있고 근사한 정자도 보인다. 이곳은 월미전통공원이다. 조선시대의 양반과 서민의 집 그리고 정원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다.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도시락을 펼쳐놓고 즐겁게 점심을 먹기도 한다.
오래된 집들 사이로 논과 밭이 보인다. 밭에는 배추와 무, 고추 등을 심어 키우고 논에는 모를 심어 가을에 추수도 한단다. 초가집 옆으로 땅이 푸르다. 싹이 튼 보리밭이다. “보리는 꼭꼭 밟아 줘야하는 데… 그래야 건강한 보리가 된다”고 아빠가 설명한다. 난 보리밥을 거의 먹어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는 보리밥에 된장찌개 끊여 먹으면 맛나다고 하신다.
‘양진당’이라는 현판이 달린 조선시대 양반집 마당에서는 콩콩 하늘로 튀어 오르는 널도 뛰고 인절미 떡도 만들고 나무 팽이 만들기 체험이 있다. 나도 인절미 떡을 맛보기위해 찰밥을 곱게 다지는 떡메를 들었다. 생각보다 무겁다. 힘 한번 쓰고 맛보는 인절미가 쫀득쫀득 꿀맛이다.
전통의상체험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안채 마루로 오른다. TV에서나 보던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화려한 옷들이 사람들을 웃게 한다. 나는 키가 작아 임금의 옷을 입어보지는 못했다. 어서 키가 컸으면 좋겠다. “걱정 마. 너 커서 결혼 할 때 입을 수 있어. 근데 언제 크니…”라며 엄마는 웃으신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신나는 소리를 따라가 보니 공원 안 제물포 마당에서 ‘필그림 앙상블’이 공연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월미산의 메아리처럼 들리는 노래와 연주에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가족도 잠시 그들의 공연에 흠뻑 빠졌다.

 


바다를 지킨 우리 해군
긴 담장을 따라 월미전통공원 밖으로 나왔다. 돌로 높게 담을 쌓아 놓은 성곽을 오르니 ‘해군첩보부대 충혼탑’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있다. 충혼탑 ? “6ㆍ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탑”이라고 아빠는 설명하신다. 아빠는 ‘해군 제2함대 주둔기념비’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월미도 앞 바다를 지키던 해군 제2함대는 1946년 처음 이곳에 창설됐고 그 기념으로 세워진 거지. 제2 함대는 지금 이곳에 없어. 1999년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됐지.”
어? 커다란 배가 태극기를 달고 공원 옆에 있다. 배 주변으로 분수가 물줄기를 쏘아댄다. 물소리가 시원하다. 꼬마들이 뛰어 다니고 어른들은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는다. 놀이터 같다. 이곳은 그린비치. 인천상륙작전 당시 첫 상륙지점을 기념한 곳이다. 아빠는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설명하신다. “레드비치, 블루비치 등 3개 상륙지점을 정해서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했고 결국 위기에 있던 우리나라를 구했지. 그런데 아직도 이 땅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계속해서 바다가 시끄러우니 말이야…”. 나도 뉴스에서 천안함이 침몰되고 연평도가 폭격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물범 등 타고 정상으로
“가위, 바위, 보…” 월미도 길은 동그라미처럼 돼 있다. 어느 쪽으로 돌든지 다시 만난다. 어디부터 시작해 돌아볼 지를 정하려는 데 물범 한 마리가 느릿 다가온다. 귀여운 물범 그림을 한 셔틀카다.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마스코트인 백령도 물범을 모델로 한 ‘물범카’다. 우리는 물범의 등을 올라타고 월미산 둘레길을 돌아 산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속도는 빠르지 않다. 내가 뛰는 속도 쯤 될까? 살랑 살랑 바람을 맞으며 쉽게 정상에 올라왔다. 바다가 보인다. 섬들이 바다를 감싸고 있다. 바닷 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예포대로 발길을 옮겼다. 오래된 포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얼른 그 위로 올라가 사진 한 장 찍었다. 어휴… 눈이 부시다. 그런데 엄마는 자꾸 웃으라니 어쩌라고….
그 곳 건너편에서 보이는 투명한 유리의 월미전망대는 아이스크림 혹은 횃불같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다 보인다. 우리도 서둘러 전망대에 올랐다. ?와우! 인천이 이런 모습이었다니…’ 발 밑에 보이는 항구의 모습이 재밌다. 커다란 배가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온다. 아빠는 그게 ‘갑문’이라고 설명한다. 큰배 옆으로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수출되는 차들인데 마치 장난감 차처럼 작게 보인다.   
월미전망대를 지나 나무 계단과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이름도 모르는 아주 조그마한 꽃 들이 피어 있다. 야생화라고 한다. 이곳은 야생화가 많은가 보다. 곳곳에 세워진 안내판이 꽃과 나무를 설명해 주고 월미도의 역사도 이야기한다. 월미산은 60년 동안 군부대가 있던 곳이라 그동안 일반인 출입이 통제돼 있었기 때문에 자연이 잘 보존된 공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무도 키가 크고 우람하다.

 

이민 떠나는 게 슬펐대요
둘레길 따라 월미전통공원 반대편으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벌써 5시다. 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시간이 빠른 것 같다. 놀이기구가 언뜻 보인다. 조용한 월미산과는 다르게 시끌시끌한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엄마는 시계를 보더니 이민사박물관부터 가자신다. ?나는 놀이공원부터 가고 싶은데…’ 조금 더 크면 그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부터 하자고 해야지.
이민사박물관부터 가자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후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0분 전에는 와야 한단다. 이민사박물관은 우리나라사람들이 이민을 떠난 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에 건립되었다. “지금은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로 갔지만 그 옛날에는 비행기는 꿈도 못 꿨고 그나마 큰 배도 많지 않았어.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가 바로 월미도 앞바다였단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이민사박물관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야.” 우리 아빠는 참 똑똑하다. 아빠가 되면 다 똑똑해지는 걸까? 전시장에는 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들이 모형과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저 낡은 가방을 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좋아서 이민을 간 사람보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일 하러 간 사람들은 울면서 고향을 떠나야 했다니…. 나는 아직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낡은 사진 속  그들의 표정을 보니 왠지 슬프다.

 

 

타고 돌고… 까르르르
야호 ~ 이제 놀이공원이다.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 있는 놀이공원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먼저 엄마를 졸라 떡볶이와 어묵을 먹었다.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은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일까. 배를 채우고 나니 사람들이 제대로 보인다. 거리의 화가가 모델이 된 사람들의 얼굴을 쓱쓱 그린다. 신기할 만큼 쉽게 그리고 모델보다 더 예쁘게 그린다. “그래야 사람들이 좋아해…” 엄마는 누가 들을까 조심해서 말한다. 여자들이란… 참.
“없어졌네…” 아쉬운 듯 아빠가 말씀하신다. “뭐가?” 엄마가 궁금하다. “어… 우리 데이트 할 때 있었던 카페… 이름이 뭐지? 아 왜. 이수만씨가 운영하던 곳… 미국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했잖아, 옥상에는 큰 배가 있었고….” “아… 헤밍웨이. 그래. 없네….” “아들! 소녀시대 있지? 그 소녀시대를 키운 소속사 대표 말하는 거야.” 그 아저씨는 월미도에서 커피장사하며 이렇게 한류 열풍이 전 세계를 뒤엎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어머… 저게 뭐야? 언제 생겼지…” 엄마의 걸음이 빨라진다. 해안가에 만들어진 아기자기한 작은 공간으로 간다. 친수공원이란다. 바다로 내려 갈 수 없었던 곳인데 사람들이 바다와 더 가까워질 수 있게 거리를 좁힌 곳이다. 사람들이 좋아한다.
멀리 바다 위에 배가 떠 있다. 유람선이다. 월미도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면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도 가고 팔미도도 갈 수 있다고 한다.
내 귀에는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웃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분명 놀이공원에서 나오는 소리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내가 뭔가 하고 싶을 때 하는 행동이다. 엄마도 알아차린 듯 “알았다.” 하신다.
역시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바이킹’과 ‘크레이지 크라운’도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타가다’ 놀이기구는 콩콩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이 도르르 미끄러진다. 회전목마와 꼬마기차에서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웃는다. 범퍼카를 타고 꽝꽝 부딪쳐 보고도 싶고 풍차를 타고 하늘로 높이 올라가 보고도 싶다. 아니다. 의자에 앉아 하늘로 천천히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떨어지는 ‘하이퍼드롭’을 타보자. 바다가 바로 옆에 있어 에버랜드보다 더 신난다.
집에서도 가깝고 내가 사는 인천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는 월미도로 나들이 나오길 잘 한 것 같다. 다리는 조금 아프지만 좀더 놀다 가자고 해야겠다. 아직 하늘의 빛이 남아 있다.

 

 

 

예나 지나 월미도 꽃구경
일제의 철도국은 1920년 경인선에 임시 ‘화열차(花列車)’를 운행했다. 그만큼 월미도 벚꽃놀이는 당시 최고의 이벤트였다. 1922년 아예 육지와 월미도를 잇는 둑길을 만들고 월미도를 국내 최대의 임해 유원지로 만들어 나갔다. 야외 캠핑장, 해수욕장, 식물원, 운동장, 사슴 사육장 같은 위락시설과 함께 해수 풀장과 조탕(潮湯)을 개장했다. 봄에는 벚꽃놀이, 여름에는 해수욕, 그리고 겨울철에는 따듯한 건강욕을 즐길 수 있었다. 그 무렵 조선팔도 백성들의 소박한 꿈은 단 하루라도 월미도에 가 호사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 후 월미도는 해변가에 대형 풀이 증설되고, 밀물 때 마치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설계한 용궁각(龍宮閣)이라는 일본식 요정도 생겨났다. 1935년 무렵에는 3층 목조 건물인 빈(濱)호텔이 건립되어 많은 행락객들이 찾아들었다. 월미도는 경인도시의 ‘오아시스’, ‘해상낙원의 극치’ 등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위락시설은 인천상륙작전 중에 완전히 소실되었고 월미산의 아름다운 풍경도 초토화되어 옛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1974년 월미도와 소월미도 사이에 초현대식 갑문을 설치하면서 완전히 육지와 연결되었다. 반세기 동안 월미산은 군사기지로 엄격한 통제·제한구역이 되었다가 2001년 관광특구 지정과 맞물려 월미산 개방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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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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