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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연다
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연다
극지연구소
극지(極地)는 ‘위도가 매우 높은 지역’을 말한다. 사전적인 말보다는 달이나 화성처럼 기온, 생식 등 환경이 극한 상황에 처한, 이 세상 끝에 있는 땅의 의미가 더 가깝게 다가온다. 과거의 극지가 단순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정복의 대상이었다면 현재의 극지는 우리의 실생활, 더 나아가 인류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된 연구의 대상이 됐다. 우리나라의 극지 연구는 세계 극지탐험 역사에 비해 매우 짧다. 비록 뒤늦게 뛰어 든 후발 국가이지만 그 속도는 그 어느 나라 보다도 빠르다. 1988년 남극세종과학기지, 2002년 북극다산과학기지 그리고 2009년 극지의 바다 위를 누빌 쇄빙연구선 ‘아라온’을 만들었다. 그 중심에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자리한 극지연구소가 있다.
글. 유동현_본지 편집장 사진. 극지연구소 제공
빙산 아래 첨단과학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의 남극 연구는 1978년 남빙양 크릴조업을 시작으로 1988년 남극반도 킹조지 섬에 세종과학기지 건설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남극은 대기권, 지권, 수권, 빙권, 생물권 등 기초과학을 육성할 수 있는 천연의 과학 실험장이다. 남극의 빙하는 과거 지구의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미래를 예측할 자료가 어느 곳보다 많다. 퇴적물과 빙하층에는 과거에 일어났던 지구 환경, 생태계 변화의 흔적이 그대로 간직돼 있어 이를 복원하면 이상 기후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과 미래기후를 예측해 대비할 수 있다. 이렇듯 남극은 지구의 과거 일기장이며 인류 미래를 준비하는 최전선이다.
남극에는 우리나라에 부족한 막대한 지하자원과 생물자원, 수산자원이 있다. 세종기지 인근 지역만 해도 한국이 300~400년 가량 쓸 수 있는 가스층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남극 생명체들이 영하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형성하는 결빙 방지 물질, 저온 효소, 자외선 피해 완화 물질 등도 산업적으로 응용할 수 있어 경제적 가치가 높다.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남극대륙은 자원 확보와 극지 연구를 겨냥한 각국의 ‘총성 없는 전쟁’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 중국의 1.4배에 이르는 거대한 ‘얼음 대륙’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남극조약에 따라 각국의 영토권 주장은 유예됐는데도 현재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을 비롯한 총 29개 국가가 40개의 상주 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겨울에는 1천여 명, 여름에는 무려 4천여 명이 북적인다.
대한민국 미래의 영토, 그곳에 있다
우리나라는 1986년 11월 남극조약에 가입한 후 1988년 2월 남극반도 킹조지 섬(62°13′S, 58°47′W)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했다. 연 100명의 하계연구단은 남극의 여름에만 기지에 머물면서 연구하고 연 17명의 월동연구단은 1년간 머물면서 기지를 안전하게 유지 관리하며 상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종기지에 이어 남극대륙에 위치한 테라노바만 연안에 2014년까지 연면적 4천458㎡, 15개 동 규모의 장보고기지가 들어선다. 남극점과 1천700㎞ 떨어진 남위 74도에 세워질 이 기지는 남위 62도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심도 있는 남극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남극기지들이 동남극에 몰려 있는 것과 달리 장보고기지는 동남극과 서남극의 경계 지점에 건설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덜 진행된 서남극 연구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초속 60m의 강풍이 불어대는 극한의 땅이지만 그만큼 연구 가치는 크다. 빙하 시추와 운석 탐사기술 개발과 함께 우주, 천문, 고층 대기 분야에서 융복합을 연구해 남극대륙 기반 연구가 크게 발전될 것이다.
인근에는 꽁꽁 얼어붙은 땅 위의 빙판에 길이 3~4㎞, 너비 70m가량의 이른바 ‘얼음 활주로’를 만든다. 영하 40~50도를 오가는 남극대륙에 비행장이 들어서면 극지 탐사와 연구에 필요한 각종 보급품과 유류 수송뿐 아니라 일반인을 태운 중형 전세기도 뜨고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동안 남극 킹조지섬에 위치한 세종기지는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를 통해 보급품과 유류를 수송했고 항공편은 전적으로 다른 나라의 비행장에 의존해 왔다.
장보고기지가 완공되면 한국은 남극에 2개 이상의 기지를 보유하는 9번째 국가 반열에 오른다. 2개의 상주 기지를 보유하게 되는 것은 향후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다지는 셈이다. 남극에서의 영토권은 미래 자원 부국으로 가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극지연구에 관한한 우리는 강대국이다
북극다산과학기지는 2002년 북극 노르웨이령 스피츠베르겐 섬 니알슨(78°55′N, 11°56′E)에 건설됐다. 현재 기지 관리를 위한 상주 인원은 없으며 연 60여 명의 연구원들이 연구 목적상 원하는 기간만 체류하며 현장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다산과학기지에서는 자동기상관측시스템, 온실기체, 에어로졸 등 대기측정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극한지 유용 생물자원 연구 등을 하고 있다. 겨울의 한파, 여름의 폭염, 폭우, 태풍 등 한반도를 비롯한 북반구 기후가 급격히 변하고 있어 북극권에서의 환경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측 및 미래의 변화에 대한 예측 연구가 더욱 더 필요하다.
북극권은 영토권 주장이 유보된 남극권과는 달리 연안국들이 해역과 대륙붕의 영유권 주장으로 첨예하게 이해가 대립되는 북극해와 주권 행사 지역인 동토층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한 국가가 종합적인 환경변화 연구 및 자원조사 활동이 불가능해 국가간 영역과 분야를 나눠서 담당하고 콘소시엄을 구성해 국제간의 공동연구 또는 공동조사를 통해 북극권 진출에 대한 기반과 권한을 마련하고 있다.
남·북극 얼음 바다를 항해하는 데 쇄빙선(碎氷船)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2009년 60여 종의 첨단 연구장비를 갖춘 쇄빙연구선 ‘아라온’을 건조했다. 헬기 이착륙장과 격납고, 자동위치조정시스템, 시추기, 첨단연구 장비 등을 갖춘 ‘얼음바다에 떠 있는 해양연구소’다. 특히 아라온호에 실린 10m급 해양퇴적물 시추기로 채집한 퇴적물은 빙하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기후변화 추이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두께 1m의 얼음을 깨면서 시속 5.5㎞로, 얼음이 없으면 시속 30㎞ 정도로 운항할 수 있으며 360도 회전할 수 있고 전·후진은 물론 좌우 이동도 가능하다. 아라온호 도입 이후 공동연구를 제안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극지연구에 관한 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것이다.
송도국제도시, 극지연구의 중심
남극세종과학기지, 북극다산과학기지 그리고 쇄빙연구선 ‘아라온’ 등의 엄마 품 역할을 하는 곳이 극지연구소다. 극지연구소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다. 극지연구소는 지구환경의 원인 규명을 위해 극지역의 대기, 지질, 빙하, 운석, 해양환경, 생물자원 등의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는 심도 깊은 극지연구 사업의 추진은 물론 우리나라 주도의 국제공동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 극지연구소가 잠시 부산 이전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은 한국해양연구원이 7월부터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 확대 개편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계획에 따라 2016년 초 부산 영도로 이전할 계획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지연구소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대상에서 제외되어 그대로 인천에 남는다. 현재 극지연구소 신청사가 송도국제도시에 건설 중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세계 7대 극지 연구수준 달성을 위해 2천700억 원을 투입해 자원보존 연구, 극지 기반 기후변화 관측 등의 연구 지원, 극지연구소의 정책기능 등을 강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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