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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었기에 ‘괴물’도 있었다

2013-04-30 2013년 5월호


그들이 있었기에

‘괴물’도 있었다


글 유동현 본지편집장  사진 인천시청 앨범 발췌

 

류현진의 창영 선배들. 대회 우승 후 시청을 방문해 시장과 찍은 기념사진(1972년).  

올해는 국내 프로야구보다는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더 높다.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LA다저스 류현진 때문이다. 그는 인천 창영초등학교 출신이다.    
사진은 1972년도 창영초등학교 야구부가 시청을 방문해 시장(가운데)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이다. 류현진이 태어나기 한참 전의 대선배들이다. 그해 무슨 대회에서 우승했는지 한 키 넘는 우승기와 커다란 트로피들을 앞세운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후보들은 학교에 남겨두고 주전들만 왔는지 딱 9명만 렌즈에 들어 왔다. 
기억에 의하면 당시 인천의 초등학교 중에 야구는 창영과 서림, 축구는 축현, 농구는 송림 그리고 핸드볼은 교대부속이 강팀이었다. 이제는 운동부를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거의 없다. 전국을 제패하던 창영 야구부도 팀조차 구성하기 쉽지 않다. 원도심에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다보니 한해 입학생이 남녀 합해 30여 명 정도이기 때문이다. 원도심이 살아야 또다른 ‘괴물’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거리 예방접종. 노천이었지만 주사를 맞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1968년).

 

주사 맞는 어른의 표정과 옆의 소녀의 표정이 대조적이다(1971년).

날이 따듯해지면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과거 전염병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특히 콜레라는 죽음의 병이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는 콜레라가 세 번 창궐했다. 63년 316명, 64년 2명, 69년 137명이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 한때 북한이 콜레라균을 퍼뜨린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7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국민은 콜레라뿐만 아니라 장티푸스, 이질, 일본뇌염 등의 전염병에 많이 걸렸다.
매년 전염병 예방주사는 필수였다. 사진은 68년 동구보건소가 화평동 길가에서 가두예방접종을 하는 모습이다. 행인들은 너나 할 것이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주사를 맞았다. 당시에는 일회용 주사기도 없었다. 앞 사람이 맞은 주사기를 소독약 솜으로 한번 쓱 문지르고 다음 사람이 맞았다. 약이 부족했기 때문에 맞는다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70년 12월부터 유독 인천지역에서 장티푸스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따듯한 봄으로 접어들자 환자 수가 급증해 보건당국이 바짝 긴장했다. 학교, 공장, 시장을 가리지 않고 예방접종이 시작됐다. 사진은 71년 4월 시민을 대상으로 예방주사를 놓는 장면이다. 아기를 들쳐업은 할머니(어쩌면 엄마일 수도 있다)도 주사를 맞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전염병도 그 종류가 달라졌다. 콜레라, 장티푸스 대신 싸스, 조류독감, 신종플루 등 새로운 ‘돌림병’이 21세기에 돌고 있다. 

 

 

당시 대다수 시민들에게 그리 큰 반응을 얻지 못했을 걷기운동 캠페인(1973년).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40년 전에도 ‘잠언’이었나 보다. 사진은 1973년 동인천 광장 인근에서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이다. 피켓에 적힌 표어가 재밌다. ‘어머니 어린이도 걷기 운동에 참여하자’, ‘걷기운동 참여하여 내 건강 찾자’…. 그중 눈에 띄는 피켓 하나. ‘걸어서 건강 찾고 차비 아껴 불우(이웃) 돕자’. 당시 자가용도 그리 많지 않았을텐데 뚜벅이들에게는 사치스런 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차비가 없어서 동인천에서 주안정도는 터벅터벅 걸어 다녔던 ‘불우’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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