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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슬픈 시인의 삶
아름답고도 슬픈 시인의 삶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천재시인은 피부터 달랐을 것이다, 나는 물었다. 다를 게 뭐 있나 그냥 평범했다, 그는 답했다. 하지만 김영승은 이미 뱃속부터 시인의 긴 긴 여로를 준비하고 있던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버지의 죽음, 삶에 ‘유일한 평화의 시간’이었던 시골 할머니댁에 맡겨진 유년 시절, 외부침입자로 다시 가족 틈에 끼어든 시절 그리고 동생의 죽음. 헤어짐의 반복으로, 가슴에 무의식적인 상실감이 자리 잡았다. 외로웠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시인이 됐다.
그는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반성·서(序)> 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6만원 짜리 반 지하 사글세에 살며 늘 취해 있던 젊은 날. 번뜩 ‘이대로 젊음을 마감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를 수습하고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극빈’과 고독은 허무를 가중시키지만 그에게는 ‘찬란한’ 힘과 에너지였다.
배우고, 만들고, 기르고, 모으고… 무엇이든 무섭게 빠져들고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시를 쓰는 데도 그의 천재성은 빛을 발한다. <반성>은 개인이 철저히 소외된 80년대의 비극을 그린 첫 시집이었다. 극찬이 쏟아졌다. 하지만 감춰야 할 깊숙한 곳을 욕설과 비속어로 헤집어낸 그의 시는 불온하고 치명적이었다. 결국 한국현대시 사상 최초로 ‘음란저속도서’라는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2008년 현대시 100년을 맞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연재했던 100대·50대 시편에 그의 이름이 당당히 올랐다. 현대시작품상, 불교문예작품상, 인천시문화상 그리고 얼마 전 ‘글쟁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지훈문학상을 받았다. ‘아름다운 폐인’ 김영승. 그는 시인이었다.

최근에는 아홉 번째 시집 <흐린 날 미사일>을 펴냈다. 1998년 12월 4일 봉재산의 공군방공포대에서 미사일 한 발이 오발되어 3초 만에 지상 300미터에서 자폭한 사건이 근간이 됐다. 그 아찔한 순간은 삶의 성찰을 넘어 시가 되었다.
‘미사일 날아갔던 봉재산엔 / 보리밭은 없어졌고 / 애기똥풀 群落地(군락지)를 지나 / 롤러스케이트장 공원 / 계단 및 老人(노인)들 아지트는 / 멀리서 보면 慶會樓(경회루) 같은데 / 내가 그 앞에 있다’ (‘흐린 날 미사일’ 중에서)
지금 시인의 유일한 산책로인 그날의 동춘동 봉재산에서 그랬듯, 시인은 오늘도 인천 위에서 시를 쓴다. 그가 나고 자라고 나이 들어가고 있는 인천은, 그가 상처받고 절망하고 사랑하고 꿈을 키워 온 문학적 근원이기에. 언젠가는 인천과 자신의 삶을 그린 ‘김영승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장편 대하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부숭한 오후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다. 시인의 바람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질문을 건넨다. ‘잘 숨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에 일생의 좌우명이 담겨 있다고 했다. “나라는 존재가 철저히 숨겨지길 바랍니다. 고독하게 인파에 묻혀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시인은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저녁약속이 있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백수, 천재, 아이, 성자, 거지, 폐인, 교주, 거장, 취객이란 수식어를 단 이 범상치 않은 시인의 삶은, 그의 바람대로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흐르듯 별다른 충돌 없이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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