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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에 마구 쏘아주세요

2013-07-03 2013년 7월호

 

제 몸에

마구 쏘아주세요

 

글 유동현 본지편집장  사진 인천시청 앨범 발췌

 

구급차를 앞에 세우고 연막소독을 하고 있다(1968년).

뚜뚜뚜뚜.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올 게 왔구나.’ 그릇에 남은 밥을 입에 쑤셔놓고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큰길로 달려 나간다. 뭉게뭉게. 이미 흰 연기는 피워 올랐다. 언뜻언뜻 그 속에 아이들의 형체가 여럿 보인다. 낄 틈이 있을까. 초조해진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아이들은 연막차를 쫓아가며 괴성을 지르고 막춤을 춘다. 아, 이 냄새, 언제 맡아도 좋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흐릿함은 더 좋다.
7,80년대 여름밤이 되면 펼쳐지는 골목풍경이다. 모기를 잡기 위해 연막소독차가 동네마다 다녔다. 아이들은 연막차가 나타나면 만사 제쳐 두고 뒤따른다. 마치 온몸으로 살충제 세례를 받기라도 할 것처럼 끝까지 쫓아간다. 실제로 아이들은 연막소독을 축축하게 맞으면 모기에 덜 물린다고 믿었다. 모기 잡다 사람 잡을 만큼 살충제에 흠뻑 젖는다.
예전의 연막소독은 등유를 희석해 쓰기 때문에 기름 냄새가 심했다. 요란한 분사 소리에 흰 연기 까지 피어올라 ‘방역을 제대로 하는 구나’하는 후각, 청각, 시각효과까지 노릴 수 있었다. 그래서 연막소독을 일명 심리소독이라고도 한다. 이제 이 연막소독은 거의 사라졌다.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고 공기오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방제효과가 떨어져 이제는 분무소독으로 대신한다.
만약 예전처럼 연막소독을 한다면 요즘 아이들도 그 연막소독차를 따라 다닐까? 아마도 소리가 나도 뛰쳐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멀리 연기가 보이면 코를 막고 피해갈 가능성이 크다. 신고 정신이 투철한 아이는 바로 119로 화재 신고를 할 것이다. 사진1은 1968년 시내 도로에서 연막소독을 하는 장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카지노가 설치된 인천오림포스호텔의 건설 모습(1965년).

       
인천에 해망대산(海望臺山)이라는 산이 있었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다. 언덕 수준이지만 바다에 접했기 때문에 이름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기 좋은 곳이었다. 봉화대가 있었고 바다를 향한 대완구(대포)가 있었다. 그곳은 현재 파라다이스(옛 오림포스)호텔 자리를 말한다. 개화기에는 한때 영국영사관이 설치되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 때 함포로 폐허가 돼 빈터로 남았다.
이곳에 1965년 12월 오림포스관광호텔이 객실 43개로 개업했다. 개관 신문광고의 내용이다. ‘삼면의 바다와 월미도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절경으로 속세를 떠난 선경(仙境)의 大오림포스관광호텔’. 호텔에는 중국식 광동요리의 나이트클럽, 24시간 무휴의 지하 빠, 한국 명기(名技)가 특대(特待)하는 한국요리집과 기생관 등이 있음을 알린다.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전속 무용단을 운영했다. ‘연예부장 백’이란 이름으로 ‘무용연구생’을 모집했는 데 자격은 신장 160㎝ 이상의 미혼여성이었다.
1967년 8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이 호텔에 들어섰다. 2000년 3월 ‘카지노계의 대부’ 전낙원(田樂園)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파라다이스 호텔로 바꾼다. 사진 2는 1965년 한창 공사 중인 오림포스호텔의 모습이다.  

 

인천항 선거(船渠)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하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1974년).

현재의 인천항은 1974년 5월10일 제 2도크가 완공되면서 비로소 제 기능을 하게 된다. 66년 4월 소월미도와 월미도 사이를 매립하기 시작해 8년 만에 갑거(閘渠·수로)와 갑문(閘門)을 갖춘 국제항의 면모를 갖춘다. 이 공사에는 연인원 300만 명을 동원했으며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간 공사 때만큼의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사진 3은 준공식 날의 모습이다. 학생, 시민들이 도열해 있고 군악대의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한 사람이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걸어가고 있다. ‘그 분’이 오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 뒤로 한복 입고 쫓아가는 사람이 육영수 여사다. 육 여사는 석 달 뒤 광복절 행사장애서 운명을 달리한다. 
사진 4는 새로운 인천항의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시내 중심가에서 퍼레이드를 펼치는 장면이다.    

인천항 건설 축하 시내 퍼레이드(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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